'세상사는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1.25 펌)용산참사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2. 2010.01.01 용산 사태 모니터링 - 과연 끝났을까? - 오머이에서 퍼옴
  3. 2009.11.09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할 때
  4. 2009.11.05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 용산참사 현장 전격방문
  5. 2009.11.04 천주교전국사제시국선언문
2010.01.25 21:56

펌)용산참사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우리를 위해 싸워줄 아바타가 없다는 것이 국민들이 처한 가장 어려움일 것이다. 
요즘은 20대의 국회의원이나 아줌마 출신의 정치가등등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기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 

얼마전 농성이 끝난 용산사태는 사람들 머리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재발 , 재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주민이나 건설사의 기억속에 강력한 항체가 생길 필요가 있다.

사회적 이슈에 사람들이 공분을 일으킬 필요는 충분히 있다. 

용산참사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용산참사현장 농성투쟁을 마무리하며
10.01.25 16:58 ㅣ최종 업데이트 10.01.25 16:58  김덕진 (andyjoy)
  
▲ 2009년 1월 서울 용산로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지역 5층 건물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철거민들.
ⓒ 권우성
 철거

2009년 1월 20일 추운 겨울 새벽 용산 국제빌딩 옆 남일당 건물 옥상에 세워진 철탑 망루에서 여섯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꿈을 꾸며 매일매일 이 땅의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 한 명이 죽었다. 

 

그가 철거민이었던, 경찰이었던 살기 위해서는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돈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왔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건설자본과 자본의 달콤함을 너무나 잘 아는 21세기 대한민국 권력은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을 여섯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다. 아니 그들은 여섯 사람을 죽였다. 1년 동안 냉동고에 있던 다섯 철거민의 장례를 치렀으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줄어들겠지만 매섭게 추웠던 2009년 겨울 새벽 용산의 '죽음'과 '죽임'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2009년 세밑,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보상과 관련된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이 모든 언론의 첫머리 기사를 장식했다. 정치인들은 용산참사 해결에 자신이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알리기 위해 분주했고 남일당 참사현장은 백여명의 기자들이 다투어 취재에 열을 올렸다. 여기저기서 협상내용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이 인터넷판으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한 보수 신문은 결국 '돈'으로 해결되었다는 유치하고 악의적인 사설을 쓰기도 했다.

 

유족들과 용산 4구역 철거민 23명으로부터 협상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협상대표로 20여 차례 공식·비공식으로 서울시와 용산구청의 고위 공무원들과 마주 앉았던 필자는 답답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유족들과 철거민들, 용산범대위의 요구가 정말 '돈'이었다면 벌써 몇 달 전 협상을 끝내고 장례를 모셨을 것이다. 어찌 돌아가신 분들의 '목숨'을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1년 동안 상복을 벗지 못한 유가족들의 한과 눈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노숙을 하며 생존권을 위해 투쟁해 온 철거민들의 매일매일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협상에 임했다. 용산에서 함께 분노하고 기도하며 눈물 흘렸던 사람들, 경찰의 방패와 워커에 맞아 같이 쓰러지고, 아무 이유 없이 경찰에 강제 연행되었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협상에서 우리가 어찌 '돈' 이야기로 1년을 끌어 올 수 있었겠는가?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 임시상가와 임대상가, 세입자들의 주거안정과 권리침해를 막을 수 있는 '순환식 개발'의 토대가 될 법과 제도의 개선이 우리에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1년을 하루같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1년간 다섯 분을 냉동고에 모셔두면서까지 유족들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싸울 수 있었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승리할 수 있었다.  

 

용산참사는 이 나라가 인권국가라는 착각에서 깨어나게 해

 

  
▲ 20일 저녁 7시 30분 남일당 현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용산 유가족들이 공연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있다.
ⓒ 권박효원
 용산 참사

지난 1년간 용산참사는 다섯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용산에 쏠려있었고 용산참사 현장과 고인들이 안치되어 있던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이 수십만에 이른다. 지난 1년간 전국 각지에서 날아든 후원금을 비롯하여 쌀, 과일, 라면, 김치 등은 1년 동안 수천 명이 함께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용산참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현주소를 알게 해 주었다. 이 나라가 민주화되었고 인권국가가 되었다는 어리석은 착각에서 깨어나게 해 준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본과 세입자간의 싸움이 아니라, 공권력과 철거민들간의 싸움이 아니라, 집을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건설 자본과 쫓겨나는 이들의 편에 선 양심의 대결, 국민을 힘으로 눌러 통제하고 억압하는 무리한 공권력과 내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정당한 권리, 집회·시위·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인권의 대결이었다. 용산 싸움의 승리는 대한민국 재개발 잔혹사를 멈추어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현실화 된 것이다. 

 

협상과 관련한 모든 약속이 이행되며 유족들과 철거민들, 용산범대위는 남일당과 레아호프를 떠난다. 다들 어서 문제가 해결되어 하루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막상 그 마지막 날에는 모두들 서러움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며 몇 번을 뒤돌아보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이곳에서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197번의 미사를 봉헌했고 서울시민을 중심으로 100회가 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용산 4구역 철거민들이 손수 1천끼가 넘는 밥을 지어 함께 먹었고 은박 돗자리 위에 전기장판을 깔고 365일이 넘게 같이 누워 잠을 잤다. 분향소에는 단 한순간도 촛불과 향이 꺼지지 않았고 고인들에 대한 조문이 끊긴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이제 우리가 용산을 떠나는 것은 용산을 잊기 위함이 아니라 용산을 기억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용산참사를 해결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수 많은 과제들을 마주 하러 출발하는 것이다.  

 

요구사항과 관련한 협상은 마무리 되었지만 잠시 미루어 두었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검찰이 고의적으로 은닉했던 수사기록이 공개되어 당시 진압이 무리했고 지휘와 현장 작전 진행에 잘못이 있었음이 경찰 수뇌부의 진술에 의해 확인되었다. 1심 공판에서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1심 재판부는 다소 감정적인 판결을 하며 중형을 선고했었다. 검찰이 재판부를 기피하는 초유의 사태를 가져온 수사기록의 공개는 그동안 검찰이 경찰을 일방적으로 옹호했던 수사과정의 잘못을 만천하에 밝혀 줄 것이다.

 

용산참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례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농성 24시간도 안되어 경찰특공대와 크레인이 동원된 강경진압도 이례적이었고, 유족들에게 통보도 없이 바로 신속하게 부검이 이루어진 것도 이레적이었다. 변호인단이 검찰의 수사기록 은닉에 항의하며 사퇴하고 새로 꾸려졌고 피고인들도 재판을 거부했다. 새로운 변호인단과 시작된 공판은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8시간을 넘기며 진행되었다. 검찰이 법원의 수사기록 공개 결정을 '위법한 결정'이라고 비난하며 검찰총장이 전면에 나서며 사법부를 공격하는 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이 정권에서 밝힐 수 없다면 인혁당 사건이나 민족일보 사건처럼 오랜 시간이 흐르더라도 이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원래 살던 주민의 20%도 정착할 수 없는 재개발, 건설자본과 투기꾼들의 부만 축적시켜주는 뉴타운 정책에 전면 제동을 걸어야 한다. 조화로운 개발을 위한 법과 제도의 정착은 물론이고 가난한 사람들과는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는 시민의식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입자들이 이주할 공간을 미리 마련해 두고 재개발에 들어가는 순환식 개발이 정착되어야 한다. 용산참사 이후 국회에 많은 법들이 제도 개선을 이야기하며 발의되었고 서울시도 조례를 개정하며 나름의 노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법안, 그 어느 정책에도 서민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제도는 없다. 재개발로 인한 영업의 손실을 3개월치 보상해 주던 것을 4개월치로 늘려 놓은 것 외에는 오히려 세입자들에게 더 불리하게 개정 된 조항도 있다. 이는 우리에게 재개발과 관련된 법과 제도를 바꾸어 정착시키는 일 역시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용산이 우리에게 준 과제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제도의 개선과 정비는 물론이고 표현의 자유, 공권력의 부당한 인권침해에 대응하는 것, 문화예술과 운동이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 진보운동진영이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소통의 토대 마련 등 너무나도 다양하고 중요한 일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연대하고 신뢰하며 함께 했던 매일매일의 정신을 기억하는 일이다. 용산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2010년 1월 25일은 370일째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덕진 기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이며 용산범대위 협상대표입니다. 용산참사 현장농성을 마무리하며 알려지지 않은 용산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해 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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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17:24

용산 사태 모니터링 - 과연 끝났을까? - 오머이에서 퍼옴

나는 올해에 가톨릭 영세를 받을 것 같다. (이변이 생기지 않으면 )
요즘의 일련의 사태를 통해 무언가 느낀점이 있다. 

용산 타결의 주역은 정운찬도 오세훈도 아니다
[용산참사범대위 대표의 글] 오늘은 용산참사발생 347일째일뿐
10.01.01 15:28 ㅣ최종 업데이트 10.01.01 15:28  김덕진 (andyjoy)
  
▲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용산 재개발지역

2009년 1월 20일 새벽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철탑 망루에서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십 년 넘게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며 작은 아들 내외와 함께 레아 호프를 경영하던 고 이상림, 평생을 일식집 주방에서 일하면서 모은 재산을 모두 털어 조금 먼 미래에 두 아들과 함께 번듯한 일식당을 운영하리라는 꿈을 품고 있던 고 양회성, 자상한 아버지이자 따뜻한 남편, 궂은일은 언제나 묵묵히 먼저 나서던 사람 고 한대성, 철거투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나서 따뜻한 손과 부지런한 발로 누구보다 앞서 싸우고 동료들에게 힘을 주던 고 윤용헌, 십수년 전 건설자본에 의해 이미 쫓겨난 적이 있어 두 번은 빼앗길 수 없다며 천막생활을 하면서도 아내와 함께 마시는 소주 한 잔에 행복해 하던 고 이성수, 그리고 경찰청장에 내정된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무모한 진압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레인에 매달린 콘테이너 박스를 타고 진압작전에 나섰던 경찰특공대 고 김남훈.....

 

이렇게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었던 여섯 사람. 그가 철거민이었던 경찰이었던 간에 먹고 살기 위해 그 추운 겨울 새벽 남일당 빌딩 옥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현실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왔던 건설자본과 자본의 달콤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21세기의 권력은 이렇게 1년 전 용산에서 여섯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아니 그들은 여섯 명을 죽였다. 이 '죽음'과 '죽임'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기억에서 내려놓으려고 애를 써도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용산참사 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은 모든 언론의 첫머리 기사를 장식했고 국민들은 이제야 냉동고에 모셔둔 다섯 분의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반가워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서울시에 공을 돌리는 척하면서 자신이 용산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달라며 애틋한 표정으로 일관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회적 난제를 앞장서서 해결한 장한 일꾼의 모습으로 종교인들의 손을 잡고 승전보를 알리 듯 기자들 앞에 섰다. 남일당 현장도 백여명의 기자들이 골목길을 가득 메웠고 오열하는 유족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가 없는 '반쪽짜리 타결'이라고 했고 용산범대위는 민중의 생존권과 정권의 독재에 맞서 계속 투쟁하겠다고 했다. 어떤 신문은 '용산의 승리'라고 표현했고 어떤 신문은 '시신을 인질로 법치주의를 무너뜨렸다'고 했다. '보상금액이 40억'이니, '수배자들의 불구속 수사를 약속했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기사들도 인터넷을 달구었다. '용산문제 해결의 숨은 공신 정운찬 총리', '종교계의 노력으로 급진전', '오세훈 시장의 결단' 등 알 수 없는 제목의 기사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용산 4구역 세입자들로부터 협상과 장례를 비롯해 이후 이행절차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 중 한사람으로 직접 서울시와 용산구청 관계자들을 20회 이상 만나며 협상을 직접 진행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있다. 

 

나는 왜 정부부처 사람을 만나지 못했나

 

용산참사 문제가 발생하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다. 대표적으로 야당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나섰다. 용산범대위나 유족들은 만나지도 않겠다는 서울시와 정부의 태도에 답답해하던 차에 유력한 인사들이 나서서 해결해보겠다는 말에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그 누구도 '나'를 포함한 협상대표들을 만나지 않았다. 야당의원들이 서울시장을 면담할 때도, 총리실장을 만날 때도 '우리'는 밖에서 면담결과를 전해들을 수 밖에는 없었다. 지난 8월 서울시와 용산범대위와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보도가 되었을 때도 서울시는 한 종교단체의 성직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을 뿐 직접 만나 협상을 하려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에는 시한을 정해놓고 그 시간까지 답을 주지 않으면 모든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여기저기서 자신이 해결사가 되겠노라고 나서는 사람들은 또 생겨났지만 용산범대위 협상대표인 '나'는 정부관계자 누구에게도 우리의 요구를 직접 전달해 보지 못했다. 해결사를 자처했던 야당 정치인이나 종교인들도 이상하게도 '나'와 함께 정부관계자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즈음 신임총리가 내정되었고 퇴임하는 총리가 용산문제를 정리 할 것이라는 둥, 새로 임명되는 총리가 취임직후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설 것이라는 둥 하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서울시 관계자로부터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용산범대위는 고심 끝에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시 관계자를 만났지만 지난 8월 종교단체를 통해 전달되었던 내용을 직접 듣는 것에 불과했다. 언론에서는 새 총리가 용산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보도를 했고 취임 후 가장 먼저 용산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새 총리가 용산을 방문할 때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들고 올 것이라 확신했다. 새로 부임한 총리로서 유족들 앞에 사과 하는 것이 부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동감했고 더불어 유가족 보상과 세입자들의 생계대책을 위한 해결책도 들고 올 것이라고 부끄럽지만 기대를 했었다.

 

  
▲ 정운찬 신임 국무총리가 추석인 10월 3일 오전 용산참사현장을 만나 유가족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 용산범대위
 용산참사

실제로 정운찬 총리는 취임 직후인 추석 연휴를 맞아 남일당 분향소를 방문했다. 방문 사실은 총리가 분향소에 도착하기 1시간 전에 내게 전달되었고 우리는 분주하게 총리를 맞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시민들의 통행마저 가로막은 채, 총리는 분향을 하고 유족들과 마주 앉았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미리 써온 원고를 울먹이며 읽어내려가던 신임 총리는 "사인간의 일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서울시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정운찬 총리의 방문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용산문제는 중앙 정부의 일이 아니라는 말로 유족들과 우리들의 분노만 더 키웠을 뿐이었다. 정 총리는 조문 이후 용산문제에 대해 차가운 반응으로 일관했다. 중앙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총리가 총리실에 담당자를 정해서 연락을 하겠다고 했었지만 연락을 해 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총리실의 한 행정관이 유족 한 분에게 전화를 해서 국정감사기간이라 바쁘니 국정감사가 끝나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긴 것이 고작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와 서울시 고위관계자의 만남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똑같은 제안만을 되풀이 했다. 정부의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그는 그건 서울시가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두 달여 지리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용산범대위가 일부러 장례를 치르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으면서도 끈을 놓치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자신들이 내놓는 '안'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으면서 고인들을 냉동고에 모셔두고 장례 치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우리를 비난했다. 유가족들의 입장은 완강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보상금이 아니라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였고 이러한 불행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대책을 듣고 싶어 했다.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매도된 고인들의 명예를 회복해야 앞으로 아이들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뿐이었다.

 

12월이 절반 정도 지나기 시작하자 서울시는 '연내해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연내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압박하더니 '연내합의'라도 하자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우리는 총리의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계속 요구했다. 보상금이 아무리 많아도 총리의 사과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수십 번을 확인했다. 총리실과의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하기도 했고, 총리가 용산 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을 듣겠다며 만났다는 유력 인사들에게도 용산의 협상대표가 직접 이야기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끝까지 총리실 관계자는 한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진 서울시는 자신들이 총리실에 협조를 구하고 우리의 요구사안들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테니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자고 졸라댔다. 그 이후, 12월 20일을 시작으로 총 여섯 번의 마라톤협상이 진행되었다. 알려진 것처럼 마지막 협상은 12월 29일 오후 4시부터 30일 오전 6시 40분까지 저녁식사와 최종안 검토를 위한 두 번의 정회를 제외하곤 쉼 없이 진행되었다. 용산범대위가 장례를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제시한 정부의 사과,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생계대책, 임시상가와 임대상가를 포함한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에 합의하기까지 말로 다할 수 없는 긴장과 첨예한 대립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언론보도 잘못된 것 있지만 바로 잡지 않는 이유

 

우리가 요구의 핵심이 어느 보수 신문의 이야기처럼 '돈'에 있었다면 이와 같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돌아가신 분들의 '목숨'을 어떻게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345일 동안 상복을 벗지 못한 유가족들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노숙을 하며 생존권을 위해 투쟁해 온 세입자들의 하루하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협상에 임했다. 용산에서 함께 눈물 흘리고, 방패에 맞아 쓰러지고, 아무 이유 없이 경찰에 연행되었던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도 지울 수 없었다.

 

300일 가까이 비닐 천막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하며 진상규명과 정부사과를 촉구하는 미사를 매일저녁 봉헌하던 천주교 사제들의 그 결연한 진심이 내 심장에도 흐르고 있었다. 협상을 위해 앉은 자리는 피를 말리는 자리였다. 이제는 고인들을 편히 모셔야 할 때이고 유가족들을 일상으로 돌려보내 드려야 한다는 중압감과 다섯 유가족의 문제만이 아닌, 이땅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가 되어버린 용산의 싸움을 최소한의 성과 없이 끝낼 수는 없다는 신념이 함께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오해의 여지를 우려해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 상세한 내용을 여기서 공개할 수는 없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 중, 사실인 것도 있고 사실이 아닌 것도 있지만 구구절절 바로잡고 싶은 생각도 없다. 부족하지만 우리 모두는 승리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으나 용산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재개발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다 알게 되었고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많은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던 정부를 대표하는 총리가 책임을 느낀다고 했고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일이며 제도개선을 약속하는 것을 재가 받았다고 한다. 하늘이 반으로 갈라져도 들어 줄 수 없다던 임시상가, 임대상가,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이 미흡하나마 이루어졌고, 고인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기로 했다. 2010년을 시작하는 오늘 하루 정도는 안하무인이며 막무가내인 MB정권을 상대로 지난 1년간 우리가 참 잘 싸워왔다는 격려를 서로 나누어도 좋을 듯하다. 

 

용산범대위 성명서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문제를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남은 구속자들의 항소심 재판과 불구속자들의 1심 재판에 충실히 임할 것이다. 이 참혹한 사건의 진상규명이 이번 정권에서 불가능하다면 다음 정권, 그 다음 정권에서는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인혁당 사건, 민족일보 사건처럼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도 결국 그 진실은 밝혀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왔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용산의 싸움은 유족들이나 용산범대위 또는 운동권이라고 불리는 이들만이 해 온 것이 아니다. 이 싸움은 민주주의를 믿고 인권을 존중하는 이 땅의 모든 양심들이, 무자비한 공권력을 앞세운 권위주의 정권은 물론 정권보다도 더 커다란 힘을 가진 건설자본을 상대로 정면대결을 펼친 것이다. 용산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이고 이 땅 양심세력들의 승리이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도 국민이라는 것을, 여기에 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1년간 용산참사와 함께하며 참으로 아이러니한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며 살았다. 국민을 힘으로 억압하고 짓누르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정권과 수조원의 이익이 눈앞에 있으면서도 서민들을 위해서는 단돈 만원도 더 내어 놓을 수 없다는 자본의 실체를 보며 절망과 참담함을 느꼈지만, 1년 동안 한결같이 용산참사와 함께 해 준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과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오롯이 던질 수 있는 이들의 신념을 보며 역시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것도 느꼈다. 다음에 기회가 허락한다면 꼭 그 따뜻한 마음들과 신념의 강자들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고마운 분들, 그 이름을 적는 것도 벅차지만

 

  
▲ 용산참사범대위는 지난 12월 30일 낮 용산구 남일당 빌딩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용산 참사 유가족이 정부와 협상을 사실상 타결했다' '철거민 희생자들의 장례식은 1월 9일 치르고, 정운찬 총리가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유감을 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용산철거민참사

용산참사 다섯 분의 열사들의 장례 준비를 시작하며 지난 한해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감사한 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페이지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하지만 우선 지난 1년간 한치의 흔들림 없이 고인들의 곁을 지켜오신 유가족들께 감사드린다. 유가족들이 흔들렸다면 절대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돌아가신 분들과 옥에 갇힌 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단 한명의 이탈자 없이 끝까지 함께 한 용산 4구역 세입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외로운 감옥에서 당당함과 의연함을 잃치 않고 오히려 밖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며 투쟁하고 있는 일곱 명의 구속동지들, 6개월이 넘게 24시간 순천향 병원과 남일당 분향소를 지켜 온 전철연 연대식구들, 글로, 그림으로, 노래로, 시로, 작품으로, 만화로 용산을 기억하는 일에 헌신했던 문화예술가들, 광화문에서, 청와대 앞에서 거듭되는 경찰의 강제연행을 각오하고 단식농성을 진행했던 용산범대위 대표자들, 8개월간의 수배생활을 이겨내며 우리를 이끌어 준 용산범대위의 수배자 석점(경찰들은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들 중 남성들은 점으로 여성들을 꽃잎으로 그 수를 센다. 우리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년을 하루같이 용산만 생각하며 휴일도 없이 월급도 없이 함께 했던 범대위 활동가들이 없었더라면 어찌 오늘의 승리가 있었을까?

 

그리고 특별히 노구를 이끌고 군산에서 상경하셔서 죽을 때까지 용산에서 유족들과 함께하시겠다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우리시대의 스승, 거리의 신부, 깡패신부 문정현 신부님, 오체투지를 마치시고 다시 용산에서 단식기도를 하시다가 심장이 멎으셔 의식을 잃고 3일 만에 '부활'하셨던 문규현 신부님, 부러진 손목으로 오체투지를 마치시고 천막기도장을 지키셨던 전종훈 신부님, 남일당 본당신부을 자처하시고 물심양면으로 용산의 안주인 역할을 해주신 이강서 신부님, 그리고 온 기독교를 대표하여 혈혈단신 용산을 지키며 일당 백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신 최헌국 목사님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용산참사 100일 추모제 사회를 보며 200일 추모제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고 200일 추모제 사회를 보고 난 후 300일 추모제 사회를 맡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그 약속들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지만 300일 추모제를 마치며 용산범대위는 절대 400일 추모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 아직 다 전하지 못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용산을 기억하고 용산에서 울고 웃었던 모든 이들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하여 1월 9일 장례식에서 그동안 나누고 확인했던 우리들의 의지와 투쟁, 우정과 평화를 확인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장례가 치러지더라도 용산의 신성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땅에서 자본에 의한 개발이 지속되고 쫓겨나는 이들이 생겨나는 한, 정당한 국민의 요구를 공권력으로 짓밟는 일이 계속되는 한 우리에겐 2010년 1월 10일, 1월 11일이 아니라 용산참사발생 356일째, 용산참사 발생 357일째 일뿐이다. 우리의 싸움은 이제 '시즌 2'의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김덕진님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용산범대위 협상대표입니다. 프레시안에도 송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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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9 10:50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할 때

다음 아고라의 세일러님의 글인데 많은 사람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앞으로의 변화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리고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행동결론이 나오기 시작할 때 

비이성적 상황이 진행되어 썩은 문짝 처럼 될때 (문을 차지 않아도 부서질 것 같은)

변화가 올것이다.


변화들은  그렇게 왔다. 


----------------------------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지경이 되면,

이제 그 사회나 국가는 두 갈래 갈림길에서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는 원칙으로 변칙을 시정해서 정상적인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또 하나는 더욱 큰 변칙을 동원함으로써 그 동안의 변칙들에게 상을 주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막장 사회로 치닫는 것입니다.

 

경제학 개념으로 말하면 하나는 공황을 받아들이는 것이고또 하나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가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두 갈래 길 중에서 공황을 받아들이는 길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동안 여러 편의 글을 써왔는데,

시종일관 해온 얘기 중에 하나는 지금은 통상(通常)이 아니라 비상(非常시기이므로 통념(通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통념의 철옹성을 맞닥뜨리게 됩니다꿈쩍도 안하는 철옹성을 마주하고 좌절감을 느끼게도 됩니다.

 

철옹성과도 같은 통념 중 하나는 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돈은 윤전기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신용창조(=대출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신용(통화)인데미국에서 이 신용(통화)는 지금 수축하고 있습니다디플레이션이 이미 진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윤전기에서 돈을 찍어내고 있다’, 그러니 미국 달러의 가치가 휴지가 되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다라는 이 강력한 통념은 다른 모든 설명을 비웃으며 꿈쩍도 않는 듯 합니다.

 

또 하나의 막강한 통념은 미국이 공황으로 가는 것을 방치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30년대와 달리 지금은 경제학 지식이 발달했기 때문에 공황을 막아낼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했던 2006년말 상황에서 공황만 없으면 미국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 당시 미국의 부동산 버블을 다루는 TV프로에서 캘리포니아 메뚜기떼를 소개하는 장면을 인상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메뚜기떼란 캘리포니아 지역의 부동산투자자들의 모임인데이들이 미국 각지를 휩쓸고 다니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부동산을 매집하고 가격을 폭등시킨다고 해서 붙게 된 이름입니다.

 

TV에서는 그 모임의 성대한 연말 파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모두 호기롭고 자신만만하더군요.

그 모임에 속한 한 부부(예전에는 정상적인 직장인들이었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부인이 얘기하기를,

평생을 살아온 중에 요즘의 부동산 투자활동보다 더 짜릿하고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고 하더군요.

 

돈 놓고 돈 먹기 판에서 돈을 따고 있으니 짜릿짜릿할 것입니다.

그 부부는 이제 직장생활 같은 건 눈에 안 들어올 것입니다고작 푼돈을 벌고자 직장에 매여 상사의 눈치나 보고 하는 사람들이 좀스럽고 바보같아 보일 것입니다.

 

 

2006년말의 미국이 공황만 없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일까요?

 

2006년말의 대한민국이 공황만 없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일까요?

 

처음에 비정상이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정상으로 여겨집니다.

이제 일부 사람들은 그 비정상을 능력이라 부르며 부러워하게 됩니다.

비정상은 점점 오만해지고 이제 대놓고 정상을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정상이 무능력이라 불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지난 글,

 

검은 백조

 

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얼마 전에 TV에서 제주도의 ‘올레길’을 소개하는 프로를 우연히 봤습니다알게 모르게 벌써 많은 올레꾼들(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더군요)이 제주도의 올레길을 무작정 걷기 위해 찾고 있더군요길이 참 걷기 좋아 보이고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더불어 걷기에 좋아 보여서 나중에 저도 한 번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프로에서 올레길을 걷는 한 젊은이를 인터뷰한 대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비정규직이더군요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도 돈은 안 모이고미래의 어떤 희망도 보기가 힘든 듯 했습니다.

그 젊은이가 하는 말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는데주변에서는 자기를 보고 그런답니다열심히만 살면 뭐하냐잘 살아야지...

그 젊은이는 요즘에는 스스로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인가열심히만 살면 안되고 잘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 젊은이를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자기 스스로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대해 회의해야 할 때 사람은 가장 힘들어집니다.

올레길을 걷고 싶어 찾아온 그 젊은이에게 얘기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니다세상이 광기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이제 바로 잡힐 것이다.

 

올바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조롱당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

 

 

돈은 땀흘려 일해서 버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며 사는 것은 무능력인가...

집은 땀흘려 일해서 번 돈을 열심히 저축해서차곡차곡 모아서 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무능력한 가장인가...

 

그런 사회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을까?

 

비정상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게 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뒤늦게 그 능력있는 모습을 따라잡기위한 노력에 나서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0억 만들기’ 열풍이 불었고동시에 젊은이들 사이에 짠돌이 까페가 대유행이었습니다짠돌이 까페도 TV에서 봤는데, ‘초인적인’ 절약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다음 까페입니다점심을 사발면으로 떼우는데 옆 사무실에서 뜨거운 물을 빌려서 해결하던 젊은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10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정상적으로 일해서 번 돈으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니최대한 무리하게 담보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사놓고그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비정상적일 만큼 소비를 줄여서 짠돌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원래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자산효과 때문에 소비가 늘어나서 내수가 호황을 보이게 됩니다부동산에 대한 투기가 생겨나도 그 정도가 아직 그나마 정상의 영역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에 머무르고 있으면 이렇게 됩니다. 2006년말 미국의 과소비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데도 자산효과가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부동산 투기가 이미 정상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지경까지 이르러버렸기 때문입니다.

 

10억을 만들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소비를 줄여버린 짠돌이들로 가득찼습니다부동산 가격이 오를수록 더욱 담보대출을 늘리고 그 이자비용 부담이 더욱 커지니 소비가 늘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경제학적으로 정상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가 문제없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런 사회가 문제없이 계속 경제가 성장할 수 있을까요?

 

 

기업도 그렇습니다.

 

일전에 GM대우의 닉 라일리 회장은대우자동차의 내수판매를 도저히 대우자동차판매’ 주식회사에 계속 맡겨둘 수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우자동차판매’ 주식회사가 대우자동차의 판매에는 관심이 없고아파트를 건설하고 판매하는 데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스코라는 제철회사에 왜 아파트를 건설하는 건설회사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현대자동차 그룹이 왜 아파트를 건설하는 건설회사를 새로 만드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이런 나라의 경제에 경쟁력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다시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황만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인가?

 

 

현대 경제가 기반하고 있는 신용(통화시스템은 그 태생(역사적)을 보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제도로서 발달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용(통화시스템의 원칙을 지킨다면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신용(통화시스템의 원칙이 지켜진다면 지금 미국이 공황을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그리고 신용(통화시스템의 원칙을 어긴다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미국은 지금 공황을 받아들이는 길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공황으로 갈 리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통념 말고어떤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가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객관적인 사실은 반대로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가장 공황을 많이 겪었던 나라는 영국입니다공황을 겪고 나서 영국은 당대 최고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가장 공황을 많이 겪었던 나라는 미국입니다역시 공황을 겪고 나서 미국은 당대 최고 강대국 자리를 영국으로부터 이어받았습니다.

 

공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최고 강대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 양자 택일의 갈림길에서 하이퍼 인플레를 선택한 프랑스와 독일은 최고 강대국 자리를 두고 벌인 경쟁에서 졌습니다.

 

그 외에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중남미 각국에서 일어났습니다그 선택 때문에 중남미 각국은 선진국이 되지 못했습니다원래 아르헨티나가 누구나 당연시하던 가장 유력한 선진국 후보였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국가가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공황을 받아들인 나라들과 공황을 피하기 위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선택한 나라들은 이렇게 갈립니다.

 

공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원칙으로 변칙을 시정했기 때문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변칙이 계속해서 상을 받는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도 1990년 이래 공황(=디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양자 택일의 갈림길에서 하이퍼 인플레를 선택했다면 공황은 없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일본은 신용(통화시스템의 원칙을 지켰고 공황으로 가는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은 여러 모로 의심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선진국인 것입니다. 1990년에 하이퍼 인플레의 길을 택했다면 중남미형 국가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할 지는 자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할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일각에서는 하이퍼 인플레 얘기가 들려옵니다정말 중국이 하이퍼 인플레를 선택하는 길로 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 중남미처럼 극도의 양극화 사회로 가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러시아처럼 국가의 힘을 잃게 되고 세계 패권국가 경쟁에서 탈락하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어떤 선택을 할까?

 

08년 터져나온 경제위기 이래 하이퍼 인플레 얘기가 자꾸 들려옵니다.

혹 하이퍼 인플레 쪽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세력들의 바램이 섞여있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요?

 

하이퍼 인플레로 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면 누가 이익을 보는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를 보면 중산층이 모두 몰락하고 국민 대다수가 굶주릴 정도로 가난해진 상태에서 국가의 모든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기업들 간에도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 벌어집니다보다 더 큰 탐욕을 부린 기업부채를 동원한 무리한 확장을 계속 한 기업이 다른 기업들을 흡수하게 됩니다그 결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혼자서 독일 전체 모든 국부의 1/4을 차지했던 휴고 슈티네스 같은 인물이 탄생하게 됩니다.

 

하이퍼 인플레가 진행되면 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한 한국의 중산층이 견뎌낼 수 있을까?치솟는 이자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파트를 내놓게 되리라고 봅니다상황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불황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공황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은탐욕을 부린 주체들이 계속 승승장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이들의 탐욕이 계속 상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이 이렇게 진행이 될 것인가?

 

제주도의 올레길에서 마주친 그 젊은이는 인상도 참 선해보였습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대해 회의해야 할 때 가장 힘들어집니다.

올바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조롱당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도 이제 원칙에 의해 변칙이 바로잡힐 시기가 도래했다고 봅니다.

 

선량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낮은 법입니다.

반면 투자에 레버리지를 쓰는 사람들은 목청에도 레버리지를 써서 그런지 소란스럽습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레버리지를 쓰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법입니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떻게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하고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않고 참고 또 참고 기다립니다.

 

하지만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대해 스스로 회의해야 할 때,

비정상에게 조롱을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때,

이들은 이제 지치게 됩니다.

그리고 희망을 완전히 접게 되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원래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던 사람들이 화를 내면 더 무섭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이들 다수의 사람들그 동안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다수의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뒤에는 독재자가 출현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나폴레옹이 등장해서 혼란을 수습했고독일은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했습니다.

1차 대전 후 러시아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공산주의를 불러들였고중남미 각국에서는 군사정권을 불러들였습니다칠레의 아옌데 민주정부를 무너뜨린 군사정권의 성립도 하이퍼 인플레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사태는 바로잡혀야 합니다.

원칙으로 변칙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공황이 찾아오는 것입니다도저히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안될 때가 돼서 공황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사회나 국가가 이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 방법은 법으로 정해진 신용(통화시스템의 원칙을 기어이 어기는 것그 행위는 범죄행위임에도 이를 기어이 저지르는 것그렇게 함으로써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회를 지탱해온 다수의 사람들,

올바른 가치기준을 믿고 살아온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스스로 회의해야 하는 지경에 내몰리고,

비정상에게 조롱을 당하는 지경에 내몰려서 희망을 접고 화를 내던 사람들,

이들은 이제 완전히 절망하게 되고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독재자를 받아들입니다.

 

독재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초래된 혼란을 바로잡지만민주주의를 용납하지는 못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2009년을 사는 한국인들은 역사를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 역사가 지금의 선택을 돌아볼 것입니다.

나중에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선택하는 길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동안 써온 글에서 이치를 많이 강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런 저의 글에 대해서 이상론에 불과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원칙대로이치대로 돌아가는 것 봤냐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세상을 잘못 봐오신 것 아닌가 합니다.

언뜻 보면 이 세상이 원칙대로이치대로 잘 안 돌아가는 것 같지만잘 보시면 그래도 원칙대로이치대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상주의에 입각해서만 글을 쓰고 있다고 보신 분들은 잘못 보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진실의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편한 진실냉혹한 진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간사회가 이치대로하늘의 섭리대로 지금까지 흘러왔고 앞으로도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이치와 하늘의 섭리가 인간의 탐욕어떤 때는 악한 동기 마저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뜻을 구현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아닌가 되묻고 싶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래 그래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그래프는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의 비금융부문 부채 중 각 경제주체가 얼마 만큼의 부채를 지고 있는지 그 비율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10년 전과 지금 기업과 가계의 입장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가게 되면 10년 전에 비해 기업(=자본)들은 매우 불리해진 상태입니다.

반면 개인들은 매우 유리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의 자본들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저는 봅니다.

 

100% 확실한가?

누가 장당하겠습니까?

다만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가 진행되어 온 모습을 보면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가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자본이 불리해지고 개인들이 유리해진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으로 간 적은 없었습니다자본주의 역사의 진행은 항상 자본의 의도가 반영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한국의 기업들은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 세월이 한국의 자본들로 하여금 디플레이션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약 한국의 자본들이 10년 전과 같은 상태였다면 인플레이션을 원했을 지도 모릅니다.

 

전세계적인 대공황이 진행되고 나면 한국의 기업들이 서바이벌 게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환율이 뛰어주기라도 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위 그래프에 나타나는 개인들입니다.

앞으로 디플레이션이 닥치게 되면 10년 전에 비해 지금의 개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말았고이런 지경은 바로 잡힐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상황이 도저히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안될 때가 돼서 공황이 닥치는 것입니다.

이제 원칙이 변칙을 바로잡을 것입니다그동안 대한민국을 휩쓸어온 광기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돈은 땀흘려 일해서 버는 세상,

집은 땀흘려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사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올바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상론인가?

자본의 탐욕이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는 이상론보다는 냉혹한 현실론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치섭리는 자본의 탐욕마저도 이용해서 구현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문제는,

광기가 바로 잡히고 살만한 세상이 올 때까지 그 과정은 너무 길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그 과정 동안 많은 보통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올레길의 젊은이에게 꼭 견뎌내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었습니다어떻게든 견뎌내기만 하면 올바른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회의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다만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는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니 마음 다부지게 먹고 견뎌내라고...

 

위에서 소개한 그래프에서 지난 10년동안 개인의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저 그래프에 올라탄 개인들이 모두가 탐욕을 부린 것은 아닙니다.

무능력한 가장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필사적으로 노력한 보통사람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마음 다부지게 먹고 어떻게든 살아남으셔야 한다고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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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5 12:20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 용산참사 현장 전격방문

주요 일간지에서는 어떻게 다룰지 모르지만 신임 불교총무원장님의 첫번째 행보는 
용산 방문이었다. 나는  이 사건의 심각성을 사건이 난 첫날 알아 보았다. 
그날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아주 부끄러운 일을 한 날이고 문규현 신부가 충격으로 쓰러진 전날의 선고는
더 심각하게 부끄럽다.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 용산참사 현장 전격방문

첫 행보부터 파격, 50대 자승스님 적극적 사회참여 예고

2009-11-05 10:14:30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 자승스님(55)이 4일 취임후 첫번째 대외활동으로 용산참사 현장을 전격 방문, 앞으로 달라질 불교계의 모습을 예고했다. 전임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은 용산참사 발생후 참사 현장을 방문하지 않았었다.

자승스님은 이날 오후 3시 참사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장 건물을 찾아 20여 분간 머물며 고인을 위해 분향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자승스님은 빈소에 분향한 뒤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문제해결을 기원하는 발원문을 통해 "용산은 이 시대에 우리가 안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상징"이라며 "하루속히 이 대립과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고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대화와 소통으로 공동체 모두가 화합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자승스님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거명하며 "사바세계에 맺힌 원을 우리 모두가 풀어가도록 노력하겠다"며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이후 분향소 바로 옆 농성장으로 자리를 옮긴 자승스님은 유족들과 만나 “발원문에서도 밝혔듯이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길 기원한다”며 “정부와 유족이 한 발씩 양보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해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여러분들의 노력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불교계에서도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양회성씨 부인 김영덕 씨는 “우리는 무엇보다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라고 장례도 못 치른 채 고인을 냉동고에 넣어놓고 싸우고 싶겠느냐”며 “종교계에서 힘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참사현장을 지키고 있던 전종훈 신부도 "원장스님이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유가족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며 자승스님 방문에 고마움을 표시한 뒤, "종교인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희주 용산참사 범대위 공동대표도 “한국불교의 큰스님이 관심을 갖고 몸소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린다”며 “불교계가 유가족의 고통을 헤아려주고 문제가 빨리 해결되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유족들의 호소를 접한 자승스님은 “오히려 번거롭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다”며 “몸조리 잘 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자승스님은 지난달 22일 총무원장 선거에서 91.48%라는 사상 최고 득표율로 신임 총무원장에 당선된 뒤, "부처님 정신을 적극 실천해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과 사회를 향해 자비를 베풀겠다"고 말해, 50대 중반의 총무원장의 적극적 사회참여를 예고했었다.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4일 오후 서울 용산참사현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발원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조계종 신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4일 오후 서울 용산참사현장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발원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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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4 19:42

천주교전국사제시국선언문

천주교 신자도 아닌 내가 이글을 카피&페이스트할수 밖에 없는 요즘의 상황은 답답하기만 하다. 
지혜와 대화가 아닌 아집과 대립이 오늘의  현실이다. 
앞으로 이런 글을 읽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왔으면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시대의 공분마저 누르려하는 이상한 시절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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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4차 천주교전국사제시국선언문

대한민국 경찰·검찰·법원은 자본권력의 용역인가? 

빌라도는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였다.(마태오복음 27,24)


1. 죽음을 부르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불의가 검은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죄악의 독버섯은 활짝 꽃을 피웠다. 권력자들의 추악한 거짓과 노골적인 탐욕이 갈수록 당당하고 뻔뻔스러워지는데 허다한 생명들은 무참히 시들어간다. 지난주 두 건의 재판 결과는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백해무익한 정치집단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해 주었다.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마련된 갖가지 권능을 특정 자본권력과 극소수를 위해서 그릇되게 남용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에게는 가혹한 철퇴를 휘두르고 있으니 도저히 정부라고 볼 수 없고 차라리 강도 집단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바야흐로 신앙과 양심의 이름으로 국민 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친 것이다. 



2.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구속된 용산 철거민 아홉 명에게 6년 등의 중형을 선고했다. 누차 지적했지만 검찰은 끝까지 핵심수사기록 3천 쪽을 감췄고, 재판부는 핵심수사기록 공개 명령을 거부한 검찰의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로써 공권력의 무리한 진압작전으로 빚어진 용산참사는 검찰과 법원이 합작한 부정한 판결로 일단락되었다. 가히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완결판이라 하겠다. 참사발생 이전부터 참사 287일째를 맞는 오늘까지 국가의 어떤 기관도 일터와 삶터를 빼앗긴 채 울부짖는 국민을 편들어 주지 않았다. 용산구, 서울시, 경찰청, 정부 여당 그리고 검찰과 법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궁극적으로는 재개발건설사의 이익을 도모했다. 그런 점에서 판결의 의미는 실로 중차대하다. 앞으로 자본권력의 이해에 맞서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국가기관이 공적으로 선고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슬프다! 가해자인 국가권력이 반성은커녕 피해자 국민들을 단죄해버렸으니 이토록 가혹하고 불합리한 형벌권 행사를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국민을 괴롭히고 특정권력을 위해서만 복무하는 국가형벌권이라면 그 위임을 철회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3.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그럴 이유가 더욱 절실해졌다. 언론법 관련 헌법재판소의 기상천외한 판결은 놀랍다 못해 우스꽝스럽다. 심의표결권 침해,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 위배 등 입법절차의 위법성을 낱낱이 밝혔으면서도 법안의 효력을 인정해버렸다. ‘과정은 위법이나 결과는 합법’이라니 도대체 무슨 짓인가? 국가 권력기관의 뻔뻔스러움은 국민이 인내할 수준을 훨씬 넘어 버렸다. ‘악법도 법’이라던 유신독재가 부활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위법도 법’이라는 괴설이 어찌 이리 위풍당당한가? 



4. 권력기관들의 부당한 처신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2007년 말 삼성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자본에 의한 매수와 오염현상 때문이다. 당시 김용철 변호사와 우리 사제단은 재벌기업 일가의 비자금 축적과 경영권의 불법승계 그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불법 로비의 실상을 낱낱이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검찰 그리고 특검, 마지막으로 법원까지 극구 진실을 가리고 사실규명을 방해하였다. 그들은 이런 공통된 태도야 말로 매수와 부패의 실상을 반증해주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용산참사와 언론법에 관한 두 가지 어이없는 판결은 이런 맥락에서 빚어진 웃지 못 할 촌극이다. 



5. 지금 대한민국은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과 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재앙과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과연 누가 나서서 멸절 직전의 민주주의를 살려내고, 파괴일로를 걷고 있는 자연생태계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것인가? 오로지 국민 각자의 손에 달렸다. 권력의 주인이 바로 국민이라는 진리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지 못하면 무참히 얻어맞고 일터에서 쫓겨나 감옥에 갇히는 불쌍한 종살이는 나날이 극심해질 것이다. 



6. 한편 오만과 탐욕의 괴물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국민이라는 점 또한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부터 욕심을 줄이고, 약자에게 겸손하며 공정과 원칙에 입각한 삶을 살지 않는 한 국가권력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고 핍박할 것이다. 힘든 때 일수록 희망의 표징을 해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난 4월에 이어 10월 28일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연패하였다. 국민 대다수가 정부와 여당의 실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대학생들이 적극 나서서 분발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더욱이 헌재의 판결을 보며 비분강개 대신 명랑한 풍자로 즉각 대응하는 네티즌의 태도는 촛불 이후에도 시민들의 자신감과 활력이 여전함을 증명해주었다. 부디 불굴의 정신으로 정부의 탈선과 광기를 잠재우고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에 다 같이 신명을 내자. 군사독재의 흉악을 물리쳤던 우리의 저력을 기억하자. 



2009년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위령의 날에 

서울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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