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2.17 올해에 울나라에 들어 온다고 하는 스바루의 차
  2. 2010.02.01 토요타 가속 페달 문제 해결 발표
  3. 2010.02.01 토요타 리콜 사태에 대한 짧은 생각
  4. 2010.01.14 펌)"왜 자기 YF소나타를 돌로 부쉈을까" 차주인, 사업소측의 차량 결함 수리 거부에 격분해 파손
  5. 2009.11.16 폭스바겐 골프이야기
  6. 2009.11.07 아연도강판에 용접대신 brazing 적용 (옛날 기사)
  7. 2009.11.01 VW 비틀이야기- 작은차 이야기
  8. 2009.10.21 현대:미국의 새 자동차 강자
2010.02.17 01:54

올해에 울나라에 들어 온다고 하는 스바루의 차


자동차 마니아로서 이번에 들어 오는 스바루는 5세대 골프 GTI가 나올때에 비할만한 충격적인 구성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안전성 진단을 통과하면서 나온 결과들을 보고 경악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잘만든 것이다.   측면추돌에도 안전하고 전복에서도 안전하다는 결과였다. 
유로 ENCAP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Top Safety Picks 에 스바루의 모든 차종이 다 들어갔다. 이번에 안전성 규정은 대단히 까다롭게 변했다. 
5개 부문중 만들지 않는 대형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리스트에 들어갔다.  작년의 판매량은 15% 가량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차는 소울 하나만 들어갔다. 

차의 구성은 어떤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마 값도 비싸지 않다. 임프레자는 17000 달러부터 시작한다.  이번에 임프레자는 들어오지 않지만 임프레자가 들어온다고 했을 때 몇달을 굶으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혹한다.  미국에서 소나타 2.4와 거의 같은 가격으로 경쟁하고 있다. (임프레자의 고성능 터보 버전은  이니셜D의 타쿠미가 타는 차종이다.)
연비는 조금 떨어질 것 같은데 국내 시험주행 결과가 기다려진다. 

차를 보고 시승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것은 골프 GTI 이래로 처음이다.  과연 들어 올것인지는 미지수지만 들어온다면 시승은 반드시 할 것이다. 가계부가 꽝인 관계로 바로 살 가능성은 제로다.  (자랑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차종을 타보았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차의 수리와 부검을 구경하거나 참여했다.  자동차의 마니아라도 자기차를 자기손으로 오버홀해서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무튼 요즘같이 차가 흔해지면 지인중의 하나가 차를 싸게 주거나 그냥 준다고 해도 반드시 OK하지도 않는다. 세울 장소도 만만치 않고 고치고 뜯는 시간도 부족하다.  

골프의 차체 구성보다 더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주 좋은 구성의 차를 만들어 내었다는 점이다.dsg가 없다는 것만 유감이다.
실제로 유튜브 같은 곳에서 이 차의 주행 비디오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먼저 고장력 강판으로 차를 비행기의 캐빈처럼 만들었다. Ring-Shaped Reinforcement Frame 이라는 것으로 링처럼 만든 외골격처럼 보인다. 링구조의 40% 가 고장력 강판이다. 



이 그림이 더 확실하다.  링 모양의 구조가 있고 이 위에 철판이 입혀지는 구조다. 단순 모노코크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 같다,






에어백도 나쁘지 않다. 



낮은 무게 중심의 엔진도 한몫을 한다.


엔진이 가볍고 무게 중심이 낮아 쏠림이 작다. 


4륜 구동에 스티어링이 뛰어난 구조로 장애물을 잘 피할 수 있다


앞의 그림이 스바루의 시스템으로 복잡하지 않은 원초적 4륜 구동이 가능하다. 이 차들은 항시 사륜 구동이다. 

4룬 구동의 장점은 장애물이나 도로의 조건을 잘 극복한다는 점이다. 





엔진도 상당히 좋은편이다. 
엔진은 수평대향 엔진이다. 




서스펜션도 좋다. 


트랜스미션도 나쁘지 않다. 
CVT 버전도 수동도 오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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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23:06

토요타 가속 페달 문제 해결 발표

정말 이것이 이번 문제의 원인인가?

700만대 리콜과 사람들의 죽음이 이 부분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라면 정말 겁나는 문제다.  이정도의 실수나 에러는 흔한 것이다. 
내일 아침이 되면 이 그림이나 기사가 지면을 뒤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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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는 달리 아무도 버그픽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있다.
정말 신비한 일이다. 


Toyota announces


By Ben Rooney,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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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12:10

토요타 리콜 사태에 대한 짧은 생각

요즘 토요타 리콜에 대해 말이 많다.  
일본의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토요타는 얼마전까지 원가 절감을 위해 마른 수건을 짜고 또 짠다는 슬로건으로 하청업체를 다스렸다.
신기하게도 토요타를 배우겠다는 기업들이 줄을 섰다. 현대 기아도 그중의 하나로 알고 있다. 
경제신문에도 특집으로 연재되었을 정도다. 

만약 현.기차가 이런 일을 일으킨다면 
작은 우리나라에는 폭풍이 일것이다. 

하나씩 둘씩 품질이 나빠진 2만개의 부품을 쓰는 복잡한 기계
적어도 부품중 1/2 정도를 차지하는 주행계

이번 사건의 재탕은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다들 토요타를 따라하거나 더 열심히 따라했으니 말이다. 

아래의 글은 자체 검열을 거쳐 어딘엔가 올린 컬럼이다. 너무 애국자가 많아 직설적인 말을 하기는 정말이지 "거시기"하다. 
키워드가 있다면 시사기획 쌈의 국산차 대해부 라는 동영상을 보고 토요타를 비판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 글은 이번 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다른 분의 글이다.
이렇게 직설적인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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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상당히 비싼 물건이다. 신차일 때는 더욱 그렇다. 몇 달치 아니면 그 이상의 급여나 수입이 차에 들어가기도 한다. 없어보면 불편함을 안다. 차를 구입하는 것은 자신의 수입이나 나이 사회적인 위치와 역할을 고려하는 상당히 복잡한 게임이다.  메이커의 전략들은 색상이나 장치 디자인 같은 것으로 마치 사람들이 차를 꼭 사야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사회적 분위기도 이런 충동에 기여한다.  얼마 전 필자의 지인 한분이 차의 상태가 나빠지자 필자가 소개해준 공장의 사장님과 선문답을 했다.  자동차는 신차일 때 1억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년이 되지 않아 엔진오일을 많이 소비하는 차로 변했다. (필자의 20년 넘은 차들도 오일을 먹는 차는 없다.) 

- 엔진의 오버홀을 해야 합니다.
- 17만 킬로 밖에 안뛰었습니다. 
- 험하게 타신 것 같고 엔진이나 미션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튼튼한 것이 아니랍니다.
17만 킬로면 많이 타신 것이고 비용은 천만원정도 듭니다.
- 고민이 됩니다. 
- 차를 바꾸시는 것은 어떨까요?
- 부담이 됩니다. 
- 조금 저렴한 차는 어떨까요.
- 사업상 사람들의 안목이 신경이 쓰입니다. 
- ...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 엔진을 오버홀하면 더 탈 수 있나요?
- 물론입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더 탈 것 같다. 경기가 좋은 시기도 아니니 신차를 구입할 것 같지는 않다. 차에 대한 신뢰성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 분은 차를 오버홀하는 쪽으로 갈 것 같은데 엔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신뢰성이 높은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더 많은 거리를 달리고 더 오래된 차들이 잘 달리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프리미엄 메이커들의 어리석을 정도의 제조품질은 언제부터인가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아무튼  중형차 정도의  가격이 오버홀과 주변비용으로 나가는 것은 주인이 그 차를 신뢰한다는 증거다.
 
이 대화의 중요하지만 생략된 키워드는 요즘은 잊어버린 단어 제조품질 (Build Quality) 라는 말이다.  90년대 까지는 중요한 용어였는데 차를 오래 타거나 안전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수치상의 성능이 비슷한 차의 가격을 2배나 그 이상이 되게 만드는 것도 제조품질과 관련된 이상한 믿음 때문이다.  이른바 over built 라는 용어는 요즘차에서는 사라졌다. 

2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만든 승용차라는 기계가 아주 복잡한 것은 사실이지만 복잡해질 수록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결정적 부속품의 품질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립이나 제어의 방법도 확실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단순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차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차가 펌웨어처럼 복잡한 컴퓨터로 뒤덮이고 , 제조단가 인하를 위해 조금씩 제조품질을 깍았다.  그리고 단순화는  다른 복잡한 사정에 의해 들어주기 어려운 요청이 되고 말았다.

사태가 이정도가 되면 문제발생을 예약하는 셈이다.

이번에 토요타의 리콜 같은 문제는 수면 속에서 들어나기를 기다리던 문제다. 운전자와 탑승자가 사망한 사건의 은폐로도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토요타의 리콜 댓수는 200만대 정도 의심되는 차들에 대한 조치로 시작하여 점차 늘어나 지난해 전세계 판매량인 698만대를 넘어서는 760만대 이상이 가속페달 결함으로 리콜 또는 자율 수리에 들어갔거나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납품한 회사는 자사의 잘못을 부인하고 있다. 비슷한 문제들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바로 다음날 혼다는 소형차종 재즈에 대해 70만대 가까운 리콜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은 "과거 10년간 외국 진출을 가속화해 온 일본 메이커에 품질 유지와 비용 절감의 양립이 절실한 과제가 됐다"며 "인명과 직결되는 자동차라는 상품에서는 품질 유지는 최저 요건이며, 특히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에게 불안을 주지 않도록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자동차업계 내에서는 이런 비용절감과 부품공통화가 지난 2005년 사장에 취임해 지난해까지 토요타자동차를 총지휘한 와타나베 가쓰아키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964년 토요타에 입사한 뒤 구매부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다. 1997년 상무, 2001년 구매담당 부사장을 거쳐 2005년에 사장에 취임했다.) '짜고 또 짜내는 방식'으로 제품 원가 절감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사장에 오른 그는 취임 이후에도 부품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을 가속화했다. 

하지만 부품 공통화와 현지화를 통한 원가 절감은 가격 경쟁력 강화로 판매 증가로 이어지면서 토요타를 세계 1위의 자동차업체로 올려놓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는 결국 제품결함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를 두고 '와타나베의 저주'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이번 문제는 페달 때문이라고 하는데 문제의 페달은 미국업체로부터 받았지만 이를 간과한 품질관리체제의 허술함은 토요타의 몫으로 돌아왔다.

토요타의 점유율은 20% 밑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산중지까지 한 입장에서 구체적인 리콜방안은 다음 주나 되어서야 발표될 것이라고 한다. 현자의 뉴스는 아직 소비자들이 크게 패닉한 정도는 아니며 딜러들이 패닉이라고 전한다. 

몇몇 메이커는  아예 토요타 차종을 바꾸면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원가 절감 노력은 거의 모든 메이커에서 일어난 현상이라 와타나베의 저주 비슷한 것은 앞으로도 어느 차종이나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차들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시사기획 쌈의 국“산차 대해부“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프로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 정이 똑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메이커로부터 고발 당한 일도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의 팩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공포물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차의 원가를 줄이기 위해 힘없는 납품업체들은 무엇인가를 계속 생략한는 것이다. 몇백원짜리 도금을 하지 않으면 워터펌프가 녹이 슬고 연료펌프에 코팅을 하지 않으면 수명이 줄어든다. 소비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수리비를 내거나 안전을 위협받는다. 그러면서 내장재나 장치들은 계속 사치스러워진다.  차라리 반대인 편이 낫지 않겠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원가절감이라는 유행과 같은 이상한 명목으로 어디서나 계속 일어나던 것이다. 앞으로 누가 또 타겟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이번 사태가 타산지석이 되어 메이커들이 이런 이상한 경쟁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모는 차가 고장이 나는 것도 문제지만 다른 차가 고장이 나도 도로에서는 위험한 일이다. 누군가는 다치게 된다.



Subject: 리콜되는 토요타

요즘 너무 바빠서 제대로 접속도 못 했네요.

우여곡절 끝에 설은 한국에서 맞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쇼핑몰에 가서 선물 줄 초콜렛 몇통을 사 왔습니다.

 

도요타 자동차가 대량 리콜에 들어갔다지요? 뒤이어 혼다도 리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국 언론보도 아주 가관입니다.

 

일본의 모노즈꾸리 장인정신 한물 갔다!

 

현대차 도약의 기회다!

 

결국 이 두 가지로 압축이 되는데요, 참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는 것을 겨우 추스르고 몇자 적어 봅니다

우선 리콜 사태를 맞은 대상 자동차를 잠시 살펴볼까요?

 

2009~2010년형 카롤라

2009~2010년형 벤자

2009~2010년형 매트릭스

 

판매 및 생산중단 모델은

2008~2010년형 하이랜더

2007~2010년형 캠리

2009~2010년형 라브4

2009~2010년형 카롤라

2009~2010년형 매트릭스

2005~2010년형 아발론

2010년형 하이랜더

2008~2010년형 하이랜더

 

오래된 차가 별로 없네요. 그렇지요? 전부 새 차에 가까운 연식입니다.

사실 인터넷 상에서는 2000년대 초반의 캠리는 정말 품질 좋았다는 소리가 많습니다.

놀랍게도 2009년 국제금융위기 당시에 만들어진 차들 상당수가 리콜 대상으로 올랐습니다.

당시 일본 자동차업계는 비정규직을 공격적으로 퇴출시키는 등 평소 잘 하지도 않던 인력 구조조정을 했었지요.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숙련된, 그리고 그 회사를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의 퇴출.

그리고 당시 프리우스 하이브리드에 올인하면서 이루어진 라인 재배치. 과연 프리우스는 명단에 없네요!

 

결국 인력 구조조정이 낳은 또다른 형태의 재앙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그나마 일본 비정규직은 우리나라 비정규직보다는 형편이 나쁘지 않은 편인데, 일본 사회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얼마나 카이샤 샤카이 (회사 사회) 일본의 근간을 뒤흔들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정말 이 사태를 계기로 일본 자동차 업계가 현대차에 무릎을 꿇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80년대 중반 아우디 자동차는 미국에서 제동이 걸리지 않는 결함이 발견되어 미국 의회 청문회까지 갔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우디가 망했습니까? 아우디의 기술은 죽었습니까? 아우디 브랜드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나요?

 

한때 Fix Or Repair Daily라고 놀림 받던 포드 자동차는 이제 미국에 단 하나 남은 미국 자동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기름값 무서운 줄 모르고 대형차만 줄창 찍어대던 GM에 비해, 시장에 맞게 몬데오, 카, 피에스타, 토러스 등

'미국차 같지 않은 미국차'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래도 세계 시장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에 팔린 일본 브릿지스톤/파이어스톤 타이어가 이유 없이 터지는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브릿지스톤은 이유 불문코 650만 본의 타이어에 대한 무상교환을 단행했습니다.

브릿지스톤 타이어는 아직도 일본을 대표하는 타이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치열한 경쟁시장이라고 하지만, 정말 망해 없어지려면 GM처럼 한 10년 정도 시장의 목소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멋대로 무개념 차를 찍어내지 않고서는 망하기 힘듭니다.  

 

특히 '리콜'이라고 하는 것은 제조사가 문제를 먼저 노출시킴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경영학의 오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지펠냉장고 21만대를 리콜했다고 삼성전자가 망했습니까?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 밥솥 리콜하고 밥솥사업 접었다고 LG전자가 망했습니까? LG전자도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제조사가 리콜을 실시하는 것이 마치 망조에 접어든 양 얘기하는 한국 언론을 보니 기가 차지도 않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한국 언론은 H사 자동차에 장착된 속도감응형 파워스티어링의 핸들 잠김 현상이 어떻게 조치되었는지는 

일언반구 말도 안 꺼내더군요. 정말 단단히 세뇌를 당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보도할 수 없겠지요.

 

아름사 여러분들이라도 알아 두십시오. 저는 확신합니다.

일본 자동차 업계 그렇게 한국 언론이 바라는 것처럼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일본 자동차업계는 2000년대 중반 도요타 자동차가 GM을 위협할 정도로 부상하자

한국 언론 전체가 앞다투어 '배우자'라고 입에 거품 물던 바로 그 대상입니다.

이번에 일본 자동차 업계 거의 망조다 라고 보도한 우리나라 M 경제지의 경우는 2000년대 중반에

아예 도요타 방식이라는 10여회에 걸친 특집 기사를 1면 머릿기사에 실었던 바로 그 신문입니다.

 

어쩌면 한국 언론은 천만대에 가까운 차를 기꺼이 리콜하겠다고 말하는 일본 자동차업계의

'고객을 생각하는 정신'마저도 '배워야' 할 지도 모릅니다.

 

리콜이 뭔지 개념도 모르는 한국언론들...그래서 ??는 신문을 돈 주고 사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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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12:15

펌)"왜 자기 YF소나타를 돌로 부쉈을까" 차주인, 사업소측의 차량 결함 수리 거부에 격분해 파손

다음 아고라에 계속 올라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차를 부순 차주의 입장이 이해는 어느정도 되는데 
올해부터 일본차들은 한국에 거의 다 진입한다, 

알티마가 들어오고 sm7보다 쌀지도 모른다. 
만약 엔환율이 내려가서 시빅같은 차들이 치고 들어오고 다른 일본차들로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면 
현기차의 안방은 위태로움에 처한다. 
내수시장에서 만드는 마진으로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데 중형차 이상은 상당히 위태로울 수 있다. 

체질개선은 쉽지 않으며 쉽지 않다는 것은 여러가지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일이 계속되면 현기차의 안방은 여러모로 위태로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 자동차 회사 하나 없는 상황을 절대 바라지 않고 있다.)

"왜 자기 YF소나타를 돌로 부쉈을까"

차주인, 사업소측의 차량 결함 수리 거부에 격분해 파손

2010-01-13 17:21:55
현대자동차의 YF쏘나타를 구입한 차량 주인이 결함 차량 수리에 미온적인 현대차측을 강력 비판하며 자기 차를 파손한 뒤 관련 글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13일 오후 다음 '아고라의 톱'은 '왜 자기 YF소나타를 부숴버린 걸까'였다.

여기에는 포항에 사는 YF쏘나타 차주가 차량 결함 및 수리 후 문제 발생 등의 이유로 현대차 사업소를 찾아갔다가 사업소측의 무성의에 격분해 자기 차를 돌로 파손한 사연과 사진들이 올라와 있다. 

차 주인의 글에 따르면, 그는 새로 구입한 YF소나타의 등속조인트 이상에 따른 차 떨림현상을 비롯해 뒷좌석 규격이 벌어져 바람이 들어오는 것, 디스크브레이크 불량, 도장불량, 소음 불량 등의 결함을 현대차 본사에 매일같이 항의했고, 이에 본사는 수리를 다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지난 12일 본사 말을 믿고 포항의 현대사업소에 들어갔더니 사업소측은 다른 소리를 했다며 대화록을 상세히 실었다.

사업소측은 우선 작은 돌 튀는 소리까지 작렬하는 소음문제에 대해 "소음문제는 정부에서 허가를 해 줬다. 이 정도 소음이 발생해도 허가를 해 줬기 때문에 현대서 판매하는 것"이라며 "소음을 막아준다며 언더코팅과 방음인가 개조시킨다고 하던가 하면 범법자가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사업소측은 또 등속조인트 이상과 관련해선 사측으로부터 등속조인트 고쳐주라는 공문을 받았음을 시인하면서 "솔직히 동호회에서 등속조인트 이야기가 나와서 휩쓸려서 본사에서 공문이 내려와서 고쳐주는 건데, 나는 동호회에 휩쓸려서 현대가 고쳐준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차 주인이 "그럼 동호회의 3만명이 떤다고 하면 이건 소나타가 잘못된게 아니냐"고 묻자, 사업소측은 "누가 그러던데요?"라고 반문했다. 차주는 이에 "그럼 동호회 사이트 가서 떨림현상 발생하는 거, 3만명이 떨린다고 하는데 뽑아 올까요?"라고 하자, 사업소측은 미소 지으며 "뽑아오세요"라고 했다. 이에 차주는 사업소측에 "3만명 떨림현상 발생하는 거 찾아오면 3만명 차 다 교환이나 환불 해준다고 각서를 쓰라"고 요구하자, 사업소측은 "내가 왜 쓰는데요?"라고 거부했다.

이에 차 주인은 "그러면 내가 차 기증할 테니까 그렇게 자부심 가지는 저 똥차 한번 타봐라. 마누라 임신해서 다음달에 애 나오는데 저런 차 타고 다니게 하고 싶겠냐"라며 주변의 돌을 주워 유리창부터 전면 후드(본네트), 선루프 등을 부순 뒤, 차를 그냥 두고 나왔다.

이 글은 이날 오후 5시 현재 조회수가 4만3천여명을 기록중이며, 해외판매에 열중하면서 국내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를 소홀히 하고 있는 현대차를 비난하는 1천300여개의 댓글이 붙고 있다. 가뜩이나 일본차들의 공격적 한국시장 공략으로 독점적 지위를 구가하던 내수시장에서 위기를 맞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는 현대차가 소비자들의 역린을 건드린 양상이어서, 향후 현대차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혜영 기자 Top^
"왜 자기 YF소나타를 돌로 부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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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6 11:27

폭스바겐 골프이야기

이글 역시 얼마전 적은 글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아직 완성본과는 거리가 멀다. 
(11월 15일 gti까지 적어봄)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은 위기가 온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때로 위기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정말로 기회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1970년대 초반의 폭스바겐은 오늘날의 혁신을 만들어 내는 회사의 이미지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였다. 

1970년 폴크스바겐의 공장은 최대의 공장 가동률을 기록한다. 비틀은 25년째 진군 나팔을 불고 있었고 비슷한 차종들이 다 잘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70년대 초반부터 세계 자동차 산업은 격변을 맞이한다. 유럽의 자동차회사들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일본업체들은 미국과 유럽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의 석유위기는 회사들을 궁지로 몰아갔다. VW도 마찬갖여서 비틀의 판매고는 급속도로 감소되었고, 비틀의 다음 모델은 무엇인지에 대해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해답은 즉각 도출되지 않았다.  1968년 쿠르트 로츠가  신임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경쟁자이던 Fiat에는 Fiat124 같은 강력한 모델이 있었다. VW은 Fiat에게 유럽 1위 자리를 내준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은 없어 보였다. 

대표작인 비틀은 너무 오래된 플랫폼이었고 매출은 떨어지고 있었다. 경영진들이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차종을 만들어 내려고 했으나 새로운 차종의 개발은 실패나 외면으로 끝나고 있었다. 점차 새로운 차종이 늘어나는 분위기에서 폭스바겐은 고전하고 있었다. 파국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판매량은 급감하고 있었고 회사는 자금난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비틀이 우수한 차종이기는 했으나 성능은 좋지 않았다.  일본과 유럽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우수한 차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비틀을 탈 이유가 없었다.  토요타의 코롤라같은 일본차들이 폭스바겐의  고객들을 끌어가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자체적인 플랫폼 개발에 실패하고 있었지만 폭스바겐이 인수한 자회사중에 새로운 차종개발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회사가 있었다. 아우디였다. 아우디는 경영이 어려워 벤츠에 인수되었다가 다시 폭스바겐에 인수된 회사였다. 폭스바겐의 자동차연합에 속한 몇 개의 회사 중 하나였다.  아우디는 전륜구동의 중소형차의 플랫폼 개발에 대해 강점이 있었다. (당시는 아직 후륜구동이 대세였다.)  전륜구동은 작은 사이즈의 차에서도 좋은 성능과 공간활용면에서 유리했다. 이미 몇 년전에 오스틴의 미니가 전륜구동으로 크게 성공했다. 

로츠의 후임인 라이딩은 취임전 아우디에 있었다.  라이딩은 아우디 80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폭스바겐에 필요한 엔지니어링을 수혈한다. 라이딩은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팀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새로운 바디 , 새로운 엔진 , 새로운 디자인을 짧은 시간내에 끝내야 했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라이딩은 기존의 아우디 80을 이용하여 VW에 적용시킬 수 있는 모델 개발에 착수한다.  이태리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쥬리아로에게 모델 디자인이 의뢰되고 모델 이름은 파사트라고 붙여졌다. 이 차는 실용적인 차로 출발했으나 수냉식, 전륜구동 방식으로 이제까지의 폭스바겐의 제작 원칙에 변화를 일으킨 모델이었다.  비틀은 잊어야 했다. 그리고  파사트는 골프보다 한해 먼저 나왔다.   

아우디의 소형 플랫폼은 A 플랫폼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트는 이보다 큰 B 플랫폼이다. 만약 아우디가 기술적 유전자를 이전부터 준비하지 않았다면  골프는 더 늦게 또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아우디 80 마저 그 이전의 기술유전자와 무관하지 않다. F103이라는 아우디의 모델인데 이 차는 1955년부터 전륜구동을 구현하고 있었다.  필자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는데에는 많은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기술이 완숙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F103이 없었다면 아우디80도 파사트도 골프도 없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을 내놓는 것은 자회사나 합병이전의 독립적인 회사인 경우가 많다. 자회사가 답을 내놓은 경우는 상당히 많아서 푸조도 SIMCA 와 Talbot의 설계에 기반해서 새로운 전륜구동 기술로 넘어갈 수 있었고 경영난을 타개할 수 있었다. 골프와 비슷한 푸조 205의 개발은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다. 독자적인 기술이나 원천기술의 개발에는 적어도 몇 년이 필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폭스바겐은 자회사의 기술로 성공적인 모델을 내놓게 되었는데 바로 골프다.  골프는 1969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74년에 발표되고 생산이 시작된다.  당시의 골프는 여러 가지로 새로운 차로 그 후에 나오는 많은 중소형차들의 패러다임을 제공하게 된다. 경차를 제외하고 해치백이라는 장르를 유행시킨 것도 골프이다. 요즘이야 해치백이 이상한 차종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승용차= 세단” 이라는 공식 같은 것이 있었다. 폭스바겐은 공간의 활용을 중요시해서 차를 해치백으로 만들어 낸다. 골프와 파사트의 설계는 이탈디자인의 주지아로가 맡았다. (사진을 보면 같은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포니가 연상된다.)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엔진은 수평대향으로 배치하고 뒤차축은 토션바라는 방식으로 차체에 차축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뒤축을 토션바 형태로 만들어 놓으면 트렁크부분의 가용면적은 무척 넓어진다. 박스형의 실내공간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엔진룸이 크고 실내에 후륜구동을 위한 차축이 지나가는 당시의 차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결과는 당시에는 이와 비슷한 차라는 것이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차종이었다.  가장 보수적이던 폭스바겐이 아우디의 DNA를 갖고 완전히 새로운 차를 만들었다.  

EA111 같은 골프의 엔진은 다른 회사보다 특별히 뛰어나다고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폭스바겐으로 보면 새로운 엔진이었다.  배기량은 1.1L에서 1.8L까지 있었고 엔진은 당시로서는 우수한 편이었다. 

골프는 실용적인 차종으로서 매우 성공적이어서 10년동안 700만대 가까운 판매가 일어났다. 유지비가 쌌고 성능은 우수했다. 그리고 실내공간은 소형차의 입장에서 경이적으로 넓었다. 덕분에 회사의 경영상태는 좋아졌다. 비틀의 고전을 만회할 수 있었다. 1976년에는 고성능버전인 GTI를 만들어 저렴하면서도 고성능이 차종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GTI는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예상외로 많이 팔려서 고성능의 해치백이라는 의미를 갖는 “핫해치(HotHatch)” 장르가 만들어졌다.  자료에 따르면 GTI는 예상했던 수량의 10배 정도가 팔렸다고 한다. 
골프는 어려운 시기에 놀라운 변신을 일으킨 폭스바겐의 역사를 반영한다. 70년대 초반 공장의 라인 ,엔진 ,디자인 그리고 엔지니어링까지 모든 것이 2-3년내에 바뀐 역사였다.  그 뒤에는 10여년간 기술적 DNA 를 다져온 아우디의 엔지니어링이 있었다. 



(골프 2,3,4세대)

폭스바겐은 골프 1세대의 출하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우디의 DNA로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요즘처럼 개발에 컴퓨터 CAD를 투입할 수 있던 시기도 아니고 하나하나 다 만들어 보아야 실제의 차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던 시기에는 사소한 부품의 개발에도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전체적이 개발은 가장 느린 것에 의해 지배받는다. 특히 엔진과 파워트레인의 개발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폭스바겐은 운좋게도  2-3년만에 개발을 끝낼 수 있었다. 자회사 아우디의 기술과 전통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의 회사라고 해도 핵심 개발진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이들의 실력과 성취는 회사의 운명을 좌우했다.  몇만명이 넘는 종업원들의 운명이 몇 명에게 걸려있는 셈이고  더 크게는 폭스바겐의 공장이 있던 작센주와 서독의 경제도 폭스바겐의 거취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좋은 설계도구를 갖고 있는 요즘도 엔진의 생산과 신모델 개발은 쉬운일이 아니다. 차의 새로운 모델은 더욱 그렇다. 몇 년에 하나 또는 십년에 하나 정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일어난다.  컴퓨터에 데이터만 들어있다면 NC 공작기계는 완전한 엔진을 철이나 알루미늄 덩어리로부터 만들어 낼 수 있다. 당시에는 몇 개의 중요한 계산과 경험적인 지식으로 엔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몇 개의 중요한 수치는 불변이었다.  이 수치는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의 차에 적용시켜 만든 것으로 몇 년동안 깍고 만들고  실패하고 성공한 일들의 총합이다.  그러니 위기에 처한 당시의 상황에서는 놀랍게 빠르게 변신했다고 볼 수 있으며 폭스바겐이 벤츠로부터 아우디를 인수받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는 알 수 없다.

70년대 초반부터 B 플랫폼인 파사트와 골프가 미국시장에서 각각 Dasher와 래비트라는 이름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 판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이들은 파사트와 골프라는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아갔다. 당시의 폭스바겐의 이름짓기는 바람이나 해류의 이름을 붙였고 요즘도 이 이름들은 대부분 남아있다. 파사트 (Passat)는 독일어로 무역풍을 부는 이름이다. 골프(Golf)는 gulf stream의 독일식 이름이다. 제타(Jetta)는 제트기류를 의미하며 보라(Bora)는 크로아티아에서 그리스지역에 부는 북서풍의 이름이다.  폭스바겐의 다른 차종인 Sirocco 역시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넘어오는 바람의 이름이다. 벤토(Vento)는 아예 라틴어로 바람 그 자체를 이르는 단어다. 

1세대의 골프는 휠베이스(앞차축과 뒷차축 사이의 거리)가 240cm  , 길이 370cm ,차폭은 161cm ,높이 139cm 에 차중이 790 kg에서 970 kg  정도의 차였다.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작은 차라고 할 수 있다.  실제적인 비교를 한다면 프라이드보타 10cm 정도 긴 차라고 보면 되겠다. 무게는 100kg 정도 무겁지만 슈퍼미니로 분류되는 프라이드와 서브컴팩트로 분류되는 골프와는 차종이 다르다. (골프는 세대를 거치면서 점점 무거워지면서 컴팩트 급으로 넘어갔다.)  

1세대의 골프는 1973년부터 1984년까지 680 만대가 팔렸고 폭스바겐의 대표적인 차종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필자가 구글링을 한 결과 golf mk1을 복원하는 자료를 몇 개 발견했다. 어떤 블로그(http://mk1golf.blogspot.com/)  에 있는 자료는 재미있는 자료다. 엔진룸과 DIY 매니아들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하인즈 매뉴얼의 그림이다.  사진에 나온 것처럼 엔진룸은 극도로 단순하며 고장이 날 요소가 없어보일 정도다. 엔진룸이 이 정도로 클리어하면 고장의 발견과 수리의 접근은 훨씬 쉬어진다.  얼마전 구경한 mk2 골프의 엔진룸도 사진과 비슷하다.  간단히 생각하면 가벼운 무게는 서스와 구동계통의 고장을 줄이고 출력이 크지 않으니 엔진에 큰 무리도 가지 않는다. 

10년 동안 성공적으로  실용적인 차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은 골프는 다시 2세대로 접어든다. 차체가 튼튼해지기는 했으나 종전처럼 큰 변화는 없었다.  길이는 180 mm 가 증가했고 폭은 55 mm 높이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휠베이스도 거의 같았다. 다만 무게는 120 kg 가 증가했다. 초기의 주지아로의 디자인에서 별로 변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크게 증가한 이유는 안전장비의 증가 때문이었다. 우선 범퍼가 커졌다. 당시 차량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도 큰 이유다. 범퍼는 예전의 포니와 비슷한 빈약한 수준에서 90년대의 차들과 비슷한 커다란 범퍼로 변했다. 

골프 mk1의 충격적인 데뷔와는 달리 2세대의 골프는 그정도로 큰 임팩트를 추지는 못했다.  판매량은 630만대로 나름대로 성공적이었지만 푸조의 205 시리즈나 혼다의 시빅 같은 차들이 골프의 경쟁상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3세대의 골프는 91년부터 99년까지 480만대가 생산되었다. 1992년에는 유럽의 car of the year 와 1997년의 best family car 에 선정되기는 했지만 모델의 임팩트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다른 회사들이 이미  많은 발전을 해서 경쟁자는 늘어났다. 폭스바겐은 이 당시 다시 경영적인 어려움에 빠지고 만다. 이 위기는 다른 경쟁자에 비해 너무 많은 인원과 복잡한 규제가 원인이었다고 전한다. (당시의 회장이었던 피에르 파에히 회장의 회고록에는 이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 이 당시에는 포드의 에스코트와 오펠의 아스트라가 경쟁자로 등장했다. 

4세대의 골프는 경쟁이 치열한 세그멘트에서 다른 차종과 차별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들어간 차종이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430만대가 생산되었다. 처음에는 판매가 호조를 보여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에 등극했지만 푸조 206의 돌풍에 밀려서 2002년부터는 2위로 밀려나고 만다.  

다른차들과의 차별성을 서서히 잃어가던 골프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2004년 5세대의 골프가 나오면서 부터다.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차종도 5세대의 골프다.  

 








유전자나 기술의 원형이 잘 바뀌지 않는 것처럼 차들도 잘 바뀌지 않는다.   제조사의 설계 철학이 금방 바뀌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용자들도 원래의 아이덴티티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숙한 그 무엇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새로운 개혁과 도약은 모험이다. 

골프의 5세대가 그런 도약이었는데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꾸준히 개량된 골프의 많은 것들이 다시 새로운 것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변화는 매우 커서 엔진과 변속기 차체가 모두 변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바뀌지 않은 것은 차가 해치백 수준이라는 것과 예전의 골프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조금 가지고 있다는 정도다.  그러니까 브랜드만 골프인 셈이었다.  단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필자 역시 변화가 크게 일어난 GTI가 어떤 모습인가가 크게 궁금했다. 

처음에 골프가 나올 무렵 그 전까지의 차와 너무나도 다른 미래의 차같은 느낌을 받았노라고 일본의 평론가가 말했다고 하는데 5세대의 골프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4 세대와는 상당히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예전의 1세대가 아우디에서 원천기술을 수혈받은 상황이라면 5세대의 골프가 나오는 시점에는 폭스바겐 그룹의 다른 차종들도 갑자기 새로운 기술로 수혈받은 느낌이었다. 파사트를 포함한 아우디의 차종들도 신형 골프의 기술로 무장했다. 폭스바겐의 차들은 차별화되기 시작했고 실제로 잘 팔렸다. 소비자들이 바로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성공을 예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너무 열심히 적다보면 vw의 광고지나 자동차 전문지에 나오는 길고 지루한 이야기로 변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크게 3가지 정도로 적는 것이 나을 것 같다. FSI 엔진의 출현 , DSG 변속기 , 새로운 차체이다. 

우선은 엔진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5세대 골프의 엔진은 가솔린의 경우 일반 차종은 FSI 라는 기술을 사용했고 GTI는 FSI에 터보 차저를 붙였는데 각기 150 마력과 200마력 정도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엔진인 2.5 L 엔진이 있었는데 세단 형식인 보라(Bora)에 장착된 5기통 엔진이었다.  FSI는  Fuel Stratified Injection 의 약자로 가솔린을 고압으로 분사하는 방식으로 다른 엔진보다는 조금 앞선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가솔린 엔진은 작은 연료펌프를 통해 낮은 3 기압 전후의 압력으로 인젝터를 통해 분사한다. 1990년 정도가 되어서야 일반화되었으니 비교적 새로운 기술이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나자 더 높은 연소효율을 위해 고압으로 분사하는 기술이 나타났다.  

고압이라면 일단 복잡한 연료 압축과 그보다 더 복잡하고 정교한 노즐 시스템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술적 문제는 일단 커먼레일 방식의 디젤 엔진에서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디젤 엔진의 연소효율과 출력의 증강이 일어났다. 독자들은 CRDI 라는 로고가 붙은 SUV나 소형 트럭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마크를 붙이지 않는다. 가솔린 엔진에 DOHC 라는 마크를 붙이는 것만큼 진부한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흔해진 것이다. 덕분에 무거운 SUV들이 매우 위험할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터보차저도 거의 기본적인 사양이 되어있다. 
 
새로운 기술 영역에서 골프가 제일 먼저도 아니다. GDI(gasoline direct injection )라는 이름으로 1996년 미쯔비시 갤랑의 일부 모델에서 먼저 시작했다. 갤랑은 우리나라의 소나타와 관련이 있는 모델이고 일부 엔진을 공유했다. 그리고 GDI 역시 현대자동차는 V8 엔진을 공급받은 적이 있다. 이 엔진은 다시 일본과 유럽의 메이커들에게 벤치마크 대상이 되었고 토요타의 D4 시스템이나 르노의 IDE (Injection Direct Essence)가 비슷한 엔진을 만들어 내었다. 폭스바겐은  2000년도부터 , 푸조도 같은해부터 비슷한 방식의 엔진을 만들어 냈다. BMW와 벤츠 , 포드와 GM 도 그 이듬해 정도부터는 모두 합류했다.   얼마 지나면 이 방식이 대세가 될지도 모른다. 

이 엔진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25년의 하셀만 엔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셀만 엔진은 가솔린과 디젤을 같이 사용할 수 있었으나 당시에는 정교한 제어기술과 가공기술이 따라가지를 못했다.  실제로 요즘 승용차의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은 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연료계통마저 거의 비슷해서 엔진을 떼어놓아도 잘 모를 정도다. (그리고 필자같이 엔진을 만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특별 공구가 없는 이상 헤드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되었다. 공장에 가야한다. 인젝터와 연료라인에는 고압이 걸린다.) 

폭스바겐은 이 엔진을 빠르게 실용화해서 전면에 투입했는데 실제로 주력 엔진이기도 하다.  가솔린 엔진의 아우디의 A4 플랫폼과 함께 이 엔진의 테스트베드이기도 했다.  다른 메이커와의 차이점이라면 더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도박이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엔진과 GDI 계열의 엔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연료를 연소실에 직접 고압분사하므로 인젝터의 위치가 바뀌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흡기관의 끝부분이나 중간에 인젝터가 달려 있었다. 연소실 앞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큰 차이다.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연료의 혼합비와 상태를 제어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일단 흡기 사이클에 들어간 상태에서만 분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소실에 직접 고압분사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떤 상태에서나 븐사제어가 가능하고 분사양이나 타이밍의 제약이 줄어든다. 압축시에 분사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다.) 연소 방식은 가솔린엔진에 디젤엔진과 비슷한 작동방식을 섞어 놓은 것처럼 만들수도 있다. 사실 이 점이 FSI 라는 이름의 의미이다. 통칭해서 Stratified charge engine 이라는 엔진 시스템은 연소실근처에서 공기와 연료의 층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차이로 다른 엔진들과의 중요한 차이가 생겼다.  층을 만드는 것으로 기존의 GDI와도 차별이 생긴다.  골프의 브로셔에는 이런 그림이 애매하게 그려져있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상당히 애매해서 다시 뒤져보았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아래의 그림은 골프보다 약간 더 작은 FSI 엔진의 그림이다.   

성층분사를 함으로서 울트라 린번(Ultra lean burn) 모드가 가능해졌다.  연료를 플러그 바로 옆에서 분사하므로 낮은 부하에서는 연료를 흡입사이클이 아니라 압축사이클에 잠시만 고압분사해도 되는 것이다. 폭발은 엔진의 상부에서 혼합된 작은 층에서 완전연소에 가깝게 일어나고 곧바로 배출된다. 예전에는 아예 불가능하던 이야기이다.  예전의 린번 엔진이 불안정한 면이 있었던 것도 타이밍과 혼합기의 애매한 믹싱때문이었지만 연소실에서 폭발을 일으킬 정도만 소량을 고압분사하고 점화시키는 일이 가능해지자 아주 낮은 출력에서도 안정한 폭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반적인 린번이 아니라 심한 정도의 린번도 가능한 일이 되었다. 공기와 연료의 무게비율이 14:1 정도였던 일반적인 연소와 그 2배 정도인 린번 모드 를 넘어 64:1 정도에서도 연소가 가능하다. 고압의 정밀분사의 최대 이점이다. 연비와 오염물질 배출은 크게 개선된다. 일종의 엔지니어링의 기적이다. 
 
부하를 조금 더 많이 받는 연소조건인 Stoichiometric mode 에서도 균일한 연료분사의 득을 보게된다.  이 모드는 일반적인 가솔린 엔진의 사이클과 마찬가지로 흡기사이클에 연료를 분사하고 잘 섞은 다음 확실하게 연소시킬 수 있다.  그리고 최대 출력 모드(Full power mode)는  조금 더 진한 혼합비로 연소하는 것이다.  처음의 성층연소가 최대의 장점인데 약한 출력에서는 연비와 배기가스 문제가 모두 개선된다. 그리고 차들이 항상 강한 출력만 내는 것은 아니다.  가속이 없는 기간에는 사실 린번모드인 것이다. 

아마도 미래의 차들은 규제가 복잡해짐에 따라 이런 엔진방식을 더 많이 따라갈 것이다. 5세대의 골프는 데뷔 당시처럼 신기한 기술을 미리 보여주는 차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기술을 선보인지 벌써 5년 가까이 지났다. ) 처음에는 엔진의 내구성과 레스폰스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킨 것은 엔지니어링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혁신적인 DSG 변속기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밸브 어레이나 기타 사소한 문제를 빼면 내구성 문제를 별로 일으키지 않았다.   





폭스바겐의 골프는 아우디의  기술적 DNA를 바탕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아우디의 기술력은 상당히 뛰어났고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80년대가 되자 아우디는 다시 한번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데 승용차에서 4륜 구동을 구현한 콰트로라는 차종을 소개한다.  콰트로는 라틴어근으로 4라는 의미다. (Quad-) 콰트로는 1980년 3월에 제네바 모터쇼에 모습을 나타냈다.  콰트로라는 뜻은 나중에는 아우디의  4륜 구동 모델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했다. 약간의 혼동이 올 수 있지만 아무튼 맨 처음의 4륜구동 모델은 콰트로였다. 사진에 보는 것처럼 차의 디자인은 아주 강렬해서 지금도 미래형으로 보일 정도다. 


최초의 1980년식 Audi Quattro는 배기량 2,144cc의 inline-5 cylinder 10 valve SOHC엔진에 터보차져로 197마력 285Nm@3500의 토크를 지니었으며, 0-100Km/h의 수치는 7.1초, 최고속도는 220Km/h을 낼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수치였는데 당시 포르세의 911 모델들이 이 정도나 그 이상에서 맴돌고 있었고 배기량은 더 컸다. 가격은 물론 비싸기는 하지만 아주 비싼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최초의 아우디 콰트로 경주용 자동차가 같은해 데뷰했다. 처음에는 개발차량으로만 이후의 '1980 Janner Rally in Austria'부터는 정식 차량으로 달렸다.  나중인 1985년 아우디는 스포츠 콰트로를 발매하는데 이 차는 랠리를 위한 호몰로게이션 모델을 만들고 300마력을 낼 수 있었다. 호몰로게이션은 랠리에 나오는 차와 같은 시스템 규정을 따르는 차로 일정한 수량을 생산해야 한다.  호몰로게이션 모델이 마니아들의 꿈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생산된 수량이 모두 예약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미쯔비시의 란에보나 스바루 임프레짜같은 모델들이 모두 이런 경우에 속한다.  아무튼 콰트로는 다른 차들과는 출력과 구동에서 모두 차별화를 이루었다.


콰트로는 몇 번의 WRC 우승을 이루었는데  인상적인 우승의 하나는 Michele Mouton이 나올 때였다. 여성 드라이버로서 Michele Mouton이 탁월하기는 하지만 콰트로는 아주 새로운 변속장치를 들고 나왔는데 다른 차와는 달리 변속시 클러치를 밟을 필요가 없었고  레버만 위아래로 당겨주면 되었다.  오늘날의 DSG(Direct-Shift Gearbox)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Michele Mouton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화장을 고치고 방긋 웃는 랠리 드라이버는 사람들이 처음보는 이미지였다.  게다가 우승도 했다. 무톤이 강렬한 이미지의 콰트로를 타고 나와 랠리에서 우승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아우디는 승리의 원인을 정확하고 빠른 기어 변속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른 랠리 드라이버들은 분통을 터뜨렸고 그 다음부터 랠리카는 빠른 변속기를 장착하는 일이 기본으로 변했다.  비디오로 보면 수동의 클러치라고 해도 충분히 빠르지만 기계는 그보다 더 빨랐다. 


Michele Mouton 라는 검색어로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비디오 클립을 볼수 있다. 당시의 랠리라는 것이 운전자나 관람객이나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상당히 우수한 드라이버인 것은 분명했다. Pikes Peak 랠리에도 여성 드라이버 최초로 도전했다.


랠리에서 우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자동화된 변속기는 자동변속기가 아니라 클러치 두 개를 사용해서 빠르게 반응하는 기어식 변속기였다. 문제는 당시의 기술로는 정교한 제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달리고 나면 클러치판이 무서운 속도로 닳아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변속기를 초고속으로 고칠 수 있는 미캐닉이 코스마다 대기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변속기를 초고속으로 내리고 교환하는 모습이 많은 동영상에 남아있다.  요즘처럼 300마력으로 엔진의 출력을 제한하지 않던 당시의 랠리카들은 500마력 정도나 그 이상의 출력이 분명했는데 클러치는 이 힘을 변속기와 엔진사이에서 분배해야 했다.


그 후로 세월이 2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변속기들은 상대적으로 큰 발전이 없었다.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M3 에 들어가는 SMG나 도그클러치 처럼 자동화된 기계식 변속기들은 일반적인 장착되지 않았다. F1 차에 들어간 고속 변속기도 일반화되지 않았다. 엄청나게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별로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CVT 나 다른 방식의 변속기가 출현했지만 출력의 제한을 받았다.  간단히 말하면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동변속기가 아닌 기어식 변속기(스틱)의 장점은 효율 때문이다.  자동 변속기는 토크 컨버터라는 부속이 있는데 가끔씩 변속기가 망가지면 구경할 수 있는 부품이다. 거대한 도너츠같이 생긴 토크 컨버터는 두 개의 바람개비가 마주 보고 있는 원리와 비슷하다.  바람개비 하나가 고속으로 돌면 마주보는 다른 바람개비도 따라돈다. 단지 공기가 매질이 아니라 변속기 오일이 들어있는 것이 다르다. 바람개비는 임펠러라고 부른다.  이 토크 컨버터의 효율이 변속기의 효율을 결정해 버린다.  그리고 급한 가감속의 경우 컨버터는 stall 현상이 발생하며 출력이 높아지면 발열이나 기계 장치의 결함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자동변속기가 4단이 아니라 7 단 , 8단까지 증가하는 요즘에도 기계식 변속기의 효율에는 못미친다. 메이커에서 아무리 좋다고 선전을 해도 자동 변속기는 한계가 있다.  재래식 수동식 클러치의 효율은 거의 100% 인 것이다.


폭스바겐이 두개의 클러치를 이용한 변속기를 포기하지 않고 10여년간 만지작거린 끝에 만들어 낸 것이 DSG 라는 이름으로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났다.  양산차에 적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방식을 처음 만든 회사는 보그와너(BorgWarner)이고 정식 이름은 DCT (dual clutch transmission)이라고 불렀다. 폭스바겐 말고도 BMW나 포르세도 이 방식의 변속기를 라이선스 받았다.  포르세의 PDK 도 같은 방식이다.


폭스바겐의 업적이라면 양산차에 DSG를 적용한 것이다. 아우디 TT 3.2 와 골프 GTI mk5에서 이 변속기는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고 다시 여러 차종으로 확장되었다. 결정적인 결함 없이 몇 년 동안 인기를 끌었다. 특수한 모델의 몇 개 차종에 적용하는 경우와 양산차에 적용하는 것은 크게 다른 일이다.  가격이 비싼 것이 아직 문제이기는 하지만 몇 년 동안 양산한 결과 몇가지 문제를 제외하면 큰 결함은 없었다.


혹시 DSG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VW DSG (direct shift gear transmission) and Audi S-tronic FAQ 라는 문서를 보기 바란다. 많은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http://www.myturbodiesel.com/1000q/dsg_faq.htm  )


미디어에서 광범위하게 선전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이 DSG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지만 고장이 없다는 전제하에 DSG와 자동변속기 사이의 승부는 명확하게 갈린다. 효율이 100% 에 가까운 변속기와 항상 20-30% 정도를 손실하는 변속기와의 승부는 사실 정해져 있다.  오래 달릴 수록 승부는 더 명확해진다.  소비자에게는 사실 똑같은 변속기일 뿐이다. 그것도 약간 가격이 높은 옵션일 뿐이다. 하지만 메이커들은 이 기술을 상용화 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변속기가 효율을 빼앗아버리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주 절박한 아이템이다. 


앞으로 독자들은 BMW의 M DCT , 벤츠의 MCT,  피아트의 Dual Dry Clutch ,  포드의 PowerShift 같은 이름을 보게될 것이다.  현대 자동차도 2009년 ix-onic 의 컨셉카에서 DSG 비슷한 것을 제시했다. 


그러니 폭스바겐은 미래의 차를 먼저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엔진과 변속기는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DSG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일 수 있으므로 다음번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DSG 이야기 (2)

벤츠와 BMW 같은 차들이 7단과 8단 변속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YF소나타에도 6단 변속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4단변속기였다.  변속의 단수가 늘어나면 분명히 변속구간사이의 충격이 적고 연비도 좋아진다.  제대로 제어가 이루어지면 틀림없이 그렇다. 하지만 복잡함과 가격 상승이 일어난다. 이런 점들을 개선해도 해결하기 어려운 토크컨버터의 문제가 있다. 

DSG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은 작은 토크의 제한이 있으며 복잡하며 무겁다.  이들이 세련된 학습곡선에 도달하려면  세월이 더 필요하며 정비사들이 새로운 장치에 적응하는 것은 더 시간이 걸린다. 자동변속기의 진화에도 수십년이 걸렸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변속기는 고장이 잘나는 장치였다.  90년대에 들어서자 안정화되었고 요즘은 자동이 대세로 변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동변속기는 숙련된 운전자가 모는 수동변속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런 균형에 도전한 것이 DCT(Dual Clutch Transmission) , 그중에서도 대중화를 일으킨 것이 DSG다.  DSG는 내부적으로는 수동에 가깝다. 방식도 비슷하다. 능숙한 운전자는 엔진과 차의 속도를 잘 조절하여 클러치만 밟고 떼는 것이 아니라 엔진의 회전수까지 보정한다.   DSG에는 사람대신 컴퓨터가 있다. 기어를 바꿀 시점이 되면 내부의 컴퓨터가 어떤 단수에 맞출 것인지 예측을 하고 기어를 미리 바꾸어 놓은 후 시점이 되면 엔진회전수과 클러치 답력을 보정하면서 변속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반적인 조건에서 변속충격을 느끼지 못한다.  이 속도는 아주 빨라서 메이커는 8ms 에 변속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것은 내부의 컴퓨터가 예측에 성공한 경우다.  아무튼 1000분의 8초 , 100분의 1초도 안되는 시간에 변속을 일으킨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예측에 실패하면 1100ms 까지 갈 수 있는데 1초를 넘긴 시간이다. (물론 메이커의 브로셔에는 나오지 않는다.)  필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시승이나 빌려타기를 했지만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실제로 차를 몰아붙여도 그렇게 심한 조건에 쉽게 도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변속 충격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원리를 아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단면도를 검토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림은 http://www.myturbodiesel.com/1000q/dsg_faq.htm 에 소개된 것으로 변속과 기계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오일펌프다. 펌프가 엔진의 회전력으로 유압을 만들고 이 힘으로 클러치를 밀고 기어를 옮기는 것이다.  전자장치와 유압회로를 제어하는 장치는 메카트로닉스 모듈에 들어있다.  그림의 위에 회색으로 표시된 장치다. 이 장치는 전자장치가 유압 밸브를 제어한다.  내부는 상당히 복잡하다.  유압회로와 전자회로는 거의 이 부분에 모여있다. 
이 장치도 그림에 보여주고 있다. 

발로 밟는 클러치를 대신하는 것은 두장의 클러치판이 내장된 트윈클러치 판이다. 이 장치는 역시 새로운 것으로 클러치는 두 개의 축으로 분리되어 내부의 축과 외부의 축이 각기 홀수기어와 짝수 기어를 관리한다. 클러치가 마찰판과 붙으면 동력이 전달되고 떨어지면 차단된다.  기어의 변속은 1-2-3-4 또는 4-3-2-1 식으로 홀수와 짝수 기어단수 사이를 오간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클러치판과 두 개의 기어축이 절망적으로 복잡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 구조가 간단했다면 DSG는 일찌감치 출현했을 것이다.  별로 좋지 않은 야금기술과 공작기술이라면 결과는 참담하다. 과거의 간단하고 우아한 수동 클러치를 생각하면 정말 복잡하다. 수동클러치의 가격도 싸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교체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닳지 않는 다는 것은 입증되었다. (클러치는 어찌되었건 소모품이다.)

무게는 복잡함의 산물이다.  DSG는 약 90Kg 정도의 무게로 일반적인 수동 변속기보다 2배 정도 무겁다.  70Kg 정도의 장치들도 있으나 수동은 30Kg 대의 변속기도 있으니  무게의 손해를 본다. 장기간 달리면 40-60KG 정도의 짐을 더 짊어지고 다니는 셈이다.  가격도 복잡함의 산물이다.  단품으로 5500달러 정도라고 하는데 이 가격은 자동변속기의 2배 , 수동변속기의 5배가 넘는다.  아직은 도입 초기라 카센터나 정비공장에서 생소한 장비로 분류된다. 결국 DSG의 트러블이 의심되면 직영 정비소를 찾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복잡함으로 인한 고장이 어디서 날지 알 수는 없지만 간단한 구조보다는 복잡한 구조가 각종 고장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전압이 떨어지자 오동작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기도 했다.  (VW는 미국에서 10년 / 10만마일 정도의 AS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보증이 만료되고 고장이 나면 아무튼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재앙에 가깝다. 

한때 DSG는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디젤과의 궁합은 상당히 좋아서 일단 연비로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터보디젤의 경우 연비는 17km 정도이고 고속도로는 20km 정도라고 한다. auto.joins.com의 최근 실제 시승기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고속도로에서의 주행연비는 평균 18km/L 정도로 만족스러운 수치를 보여줬다. 테스트 도중 최고연비는 20km/L를 넘어서기도 했다. 반면 일반 주행시는 메이커가 제시하는 연비 대비 조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보다는 조금 더 좋았던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5,6세대 골프의 실용상 최대 장점은 DSG다.  자동변속기와 똑같지만 내부는 효율이 높은 수동변속기의 구조다. 이것 저것 토를 달기는 했지만  DSG는 문제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이 더 많다.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던 꿈의 변속기라고 볼 수 있다. 변속기의 미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필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개인적으로 현재 식구들이 타는 차종의 다음 타자로 DSG와 TDI를 장착한 골프를 생각하고 있다. (원래는 GTI를 타려고 하였으나 요즘은 조용한 주행 쪽으로 취향이 바뀌고 있다.) 중고차 값이 싸지 않다는 것은 난감하기는 하지만 인기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새차를 구입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연비와 호기심 때문이다. 호기심에 끌리는 것은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차에 대한 관심과 선망이 다른 생각들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새롭다. 단 이 새로운 장난감에 대한 선망은 5세대 이후의 골프에 해당한다. 어떤 세대의 골프는 일종의 기념비적인 차라고 할 수 있다.  

차체를 만드는 방법도 기존의 차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차체를 만들면서 레이저 용접기로 70m 정도의 구간을 균일하게 용접했다. 기존의 방법은 로봇이 전기 아크로 스폿 용접을 하는 방법인데 폭스바겐은 몇가지의 시도 끝에 레이저 용접을 포함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다른 메이커들이 미래에 따라할지도 모르는 방법이다. 다음번의 주제다



울프스버그(Wolfsburg)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은 아예 발전소를 가지고 있다. 기이한 풍경이다. 일반적인 공장은 변전소만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이나 자동차 산업은 전기를 많이 사용한다. 로봇 , 공작기계  이런 것들은 전기를 많이 먹는 챔피언이다. 모터를 돌리는 곳에도 전기가 필요하고 가열하는 곳에도 전기가 필요하며 컴퓨터에도 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동차의 각 부분을 붙이는 전기용접의 경우 전기가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합선시킨 정도의 전류가 필요하다.  합선시킨 열로 철이 녹을 정도가 되면 접착이 일어난다.   

차체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쉽게 생각해보면 뼈대인 프레임을 만들고 차체를 얹는 방식은 골격을 갖는 척추 동물 비슷한 방법이고 다른 방법은 곤충처럼 껍질의 힘으로 자체적인 강도를 만드는 (외골격 구조) 모노코크 구조다. 승용차에는 프레임을 얹는 방식이 먼저 쓰이다가 모노코크로 변했다. 승용차에서 모노코크가 아닌 차종은 구형의 페라리나 몇 종류의 슈퍼카 그도 아니면 특수차량정도다.  

그러니 요즘 차들은 모두 풍뎅이처럼 모노코크라고 보는 편이 맞다.  모노코크의 장점은 가볍고 비교적 튼튼하며 내부의 공간을 크게 잡을 수 있다. 모노코크는 1930년대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시절부터 시작되었으니 아주 오래된 기술이다. 항공기는 2차 대전부터 사용되었다.  이정도의 역사라면 거의 모르는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기하학을 2000년 넘게 배워 왔어도 아직도 어려운 과목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얼마전까지는 메이커마다 모노코크 차체의 수준이 큰 차이가 났다.  요즘도 몇몇 업체는 크게 차이가 난다.   어떤 메이커들은 아주 강성이 강한 차들을 만든다. 그중의 하나가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의 골프는 강성이 강한 차를 만들어 왔는데 5세대 골프는 기념비적일 정도로 강한 차체를 자랑한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다른 메이커들이 유한요소 해석을 통해 발전을 이루는 와중에 폭스바겐은 만드는 방법을 혁신했다.  아마 미래에는 폭스바겐이 만드는 방법을 모두 따라 할지 모른다.  ( 폭스바겐은 몇가지의 혁신으로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토요타에 근접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새로운 차체 만들기에 동원된 방법은 레이저의 도입과 만드는 프로세스의 개선이었다.  

차체를 만드는 것은 철판을 종잇장처럼 오리고  틀에 찍어서 힘과 강도를 가진 케이스로 만드는 것이다. 차를 만드는 대부분의 노력이 들어가는 곳이다. 전기와 에너지도 차체에 집중된다. 엔진이나 변속기는 차체 제작에 비하면 아주 쉬운 작업이다. 우리가 아는 공장의 이미지는 차체에 몇 개의 로봇팔이 붙어 스포트용접을 하며 불꽃을 일으키며 접혀진 철판을 붙이는 장면이다. 몇천 포인트를 용접해야 간신히 차체가  만들어진다. 예전에는 용접공들이 손으로 일일이 용접을 했다. (미국에서 로봇 도입은 노조의 강력한 반대를 겪고야 가능했다. ) 조립중 불량이 나온 차체는 정말 난감한 존재다. 수리가 불가능하면 다시 고철로 변해야 하며 작은 불량도 긴 시간의 정정과 수리를 하는 것은 난감한 문제다.  이상하게 조립된 차체는  결국 하자를 일으키기도 한다. 

차체는 같은 재료를 투입하더라도 설계의 수준에 따라 크게 변한다. 무겁기만하고 잘 비틀리며 약한 차체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부품을 적게 사용하더라도 튼튼하고 강인한 차체를 만들 수 있기도 하다.  몇%의 고장력 강을 투입해도 차체의 강도는 극적으로 달라진다. 그 다음은 구성 요소의 접착력이다. 철판이 강하더라도 접착부분이 약하면 애초의 설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약 독자들이 접힌 골판지로 장난감 차를 만들었는데 본드가 떨어지려고 하면 그 장난감은 아주 약한 장난감이 되고 말 것이다. 실제의 차에는 이런 본딩 포인트가 몇천 포인트가 있고 그중 몇 가지는 아주 핵심적이다.  결국 구조물의 결합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타고 있는 차체의 강도가 달려있으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메이커는 제작 단가가 달려있으니 역시 중요한 문제다. 그 반대의 이유도 가능하다.  

차체를 붙이는 몇 가지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리벳이나 볼트로 붙이는 방법이 있다.  예전에 항공기를 만들때 사용했다. 차에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현실적이지 않다.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 다음은 용접이다. 용접은 너무나 다양하다. 철판을 겹치고 양쪽 끝에서 작은 스포트에 전류를 흘려 그열로 스포트 부위를 녹여 붙인다.  수천개의 스포트 포인트가 차를 접착시킨다.  그러나 경우에는 아크웰딩도 사용하는데  용접봉을 전류로 녹이면서 차체를 풀로 붙이듯이 붙이는 방법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므로 주변의 철판이나 구조물이 변형되기도 한다.  아주 좋은 방법이지만 비싼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차체의 변형을 가져올지도 모를  가스를 사용하는 토치 용접이 있다. 이 방법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그 다음은 풀로 붙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항공기의 구조물들이 용접이 불가능한 장소들이 많아 도입되었다.  용접으로 인한 알루미늄 구조물들의 변형이 항공기 구조에 치명적이라 강력한 본드로 프레임을 붙인다.  이 정도로 강한 본드가 개발이 이미 끝났다.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 
 
로터스 엘리제는 정말 이런 방법으로 알루미늄 프레임을 접착했다.  알루미늄은 특히 용접하기 어려운 금속인데 프레임(간단히 커다란 알루미늄 막대)을 용접하면 열은 주변의 구조를 변형시켜 버린다. 나중에 이 부분에 크랙이 올지 않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엘리제 이전의 수퍼카들중 알루미늄 차체의 차들은 극단적으로 비쌌다.  혼다의 NSX가 그랬다.  

그 다음 방법은 일종의 납땜이한다. 철판을 납으로 붙이지는 않지만 황동으로 땜하기도 한다. 전자장치에서 구리선은 납으로 깨끗하게 붙일 수 있다. 자동차는 황동으로 붙인다. 용접이 녹여 붙이는 것이라면 동으로 붙이는 것은 열을 가해 일종의 합금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동합금을 사용하는 땜을  브레이징(Brazing)이라고 하는데 그 장점이라면 열을 받으면서 철판의 변형이 오는 것을 최소화하고 밀봉을 유지하기 쉽다는 것이다.  브레이징은 오래전에 한물 간 기술이었는데 폭스바겐은 브레이징을 중요한 접합수단으로 격상시켰다. 



대략 차들은 이런 접착 방법중 스포트 용접을 제일 많이 사용했다.  철판공장에서 납품된 매끈한 아연도강판을 프레스로 찍어 모양을 만들고 이들을 스포트로 붙인다. 그러면 표면은 전류가 흐른 부위에 약간의 상처가 남는다. 밀봉성이 100%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스프레이로 다시 녹이 슬지 않도록 재처리를 하거나 실란트로 밀봉을 해야 한다. 아니면 물이 새거나 녹이 슬게 된다. 어떤 부위는 이런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냥 타는 수밖에 없다. )  스포트 용접이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다른 방법이 불가능해서 그냥 사용하기도 한다. 일종의 타협이다.  

폭스바겐이 들고 나온 방법은 레이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VW Golf V Laser Processing Concept and Production Implementation”라는 문서에 잘 요약되어 있다. 다음번의 주제다.  이런 혁신으로  5세대 골프의 4세대에 대비해서 정적인 비틀림 강성은 80% , 동적 비틀림 강성은 15% ,  동적 구부리기 강성은 35% 증가했다.  4세대 골프의 강성은 당시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차의 강성이라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차는 여러 방향의 힘을 받는다. 비틀리기도 한다.  주행시에는 비틀림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 차의 비틀림 강성은 차를 1도 필요한 힘을 계산한다.  이번의 주제가 되는  5세대의 폭스바겐 골프 GTI의 경우는 25,000 Nm/deg 정도의 수치로 발표하고 있다.  차체를  1도 비틀리게 하는데 25000Nm 의 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수치가 높을 수록 유리하다고 하나 차제와 구조물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다양한 수치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BMW 구형3시리즈인 BMW E46은 18,000 Nm/deg , 신형 3시리즈 BMW E90은 22,500 Nm/deg 정도라고 한다. (벤츠의 구형 모델인 w124는 이들 보다도 더 높다고 하는데 수치를 입수하지는 못했다. ) 폭스바겐 파사트(2005)는 32,400 Nm/deg 정도의 수치를 보인다. 르노 스포츠 스파이더 (Renault Sport Spider)는 10,000 Nm/degree 정도로 매우 낮다. 로드스터나 오픈카들은 매우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알루미늄 바디를 사용한 로터스 엘리제도 11000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페라리 360 스파이더는 8,500 Nm/deg 정도라고 한다. 별로 힘이 없어 보이는 창틀과 유리가 차량강성에 결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포츠카들도 예상외로 비틀림 수치는 높지 않다. 그러나 포르쉐 911 터보(2000)는 13,500 Nm/deg 의 수치를 보인다.  박스터는 상당히 낮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수치를 구하지는 못했다. 박스터에 창틀과 유리를 붙인 카이맨은 강성이 높아졌다고 알려져 있다. 단단하다고 하는 차들은 대략 20000 전후의 수치를 보인다. 이 수치들은 공식적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강성이 일종의 비교자료가 되기 때문에 모두 다 발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궁금하다. )

너무 높은 수치에 연연하면 안되겠지만 너무 낮으면 주행이 피곤해진다. 차의 서스펜션은 차체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체가 코너링이나 도로의 장애물을 만나 비틀리기 시작하면 서스펜션이 충격을 흡수해도 차체는 계속 변한다. 이런 차들은 오래 탈 수가 없다. 실제로 차체의 구성요소들이 미세한 변화를 축적하기 때문이다. 메이커는 발표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차체의 변형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강성은 차량 안정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메이커들은 무게와 제작비를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강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요즘 차들은 컴퓨터로 설계되고 제작되므로 어느 정도의 강성변화가 일어날지 메이커들은 예측할 수 있다. 문제는 단가와 제작방법이다. 제작방법의 변화가 일어나면 원래는 원설계를 바꾸어야 하지만 이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 차체처럼 설계자체가 대규모 투자를 요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제조공정의 인원들도 재교육이 필요하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 튼튼한 바디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것이며 메이커들에게도 유리하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만들 수 있는 가를 알아내어야 한다.  메이커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며 10여년 이상을 개발과 생산을 겸한 기간에 투입한다.  
 
우선 모노코크를 만드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많은 변형이 나온 것이다. 오펠의 일부차량과 BMW 3의 ULSAB(Ultra Light Steel Auto Body) 모노코크차체는 철판을 가공하는 방법을 변형한 것으로 복합재료의 도입과 하이드로포밍을 이용한 것이었다. 철판을 프레스로 찍으면 언제나 모서리가 얇아지면서 강도의 저하가 오게 되므로 수압을 이용하여 균일하게 성형하는 방법이다.  얇은 철판을 사용해도 되니 전반적으로 무게는 줄어든다. 플라스틱을 사이에 두고 얇은 철판을 눌러붙여 모양을 내기도 한다.  강도와 무게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샌드위치 판을 사용한 부분은 아예 용접이 안되므로 본드로 붙여야 한다.  제조단가와 대량 생산에는 문제가 있었다. 1998년이나 그 이전부터 사용된 방법으로 무게는 40% , 강도는 50% 정도 증가했다고 한다.  Audi ASF (Aluminium Space Frame) 같이 알루미늄을 채택한 차체도 있고 ASF는 A8에 쓰였고 차체만으로는 동종의 철제 모노코크보다 40% 가볍고 40% 강하다. 유리섬유나 탄소섬유로 만든 모노코크 구조도 있었다. 유리섬유 차체는 실패했다고 하나 탄소섬유 모노코크는 일부 수퍼카에 적용되었다. 앞의 ULSAB 는 미래의 차체로 지목되지만 탄소섬유 모노코크 같은 것은 요원하다.   이들중 어떤 것들도 기존의 접합방법인 용접과는 거리가 있다.  

대세는 아직도 철판이며 철판을 강하게 붙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종이접기의 철판버전인 모노코크는 접은 철판의 힘과 접착력으로 차체의 강성을 만든다. 붙이는 일도 쉽지 않다. 고장력 강판이나 성형방법의 혁신으로 철판이 얇아지기라도 하면 용접변형도 많이 온다.  

차체를 만드는 방법을 혁신한 회사들이 많지만 폭스바겐은 그중에서도 매우 열심이었다. 기존의 프로세스는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많은 수의 스포트 용접을 정밀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포트 용접은 말 그대로 작은 스포트에 전류를 흘려 두 개의 철판을 붙이는 것이다. 스포트 개수가 많아질 수록 좋겠지만 용접 포인트가 많아질수록 시간이 많이 든다. 라인에 투입되는 시간이 늘어나고 생산댓수는 증가하지 않는다.  접촉면에는 변형이 온다.

그리고 스포트 용접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도 있다.  용접부위가 길고  균일한 용접이 필요한 용접부위도 있다. 여기는 아크용접으로 해결한다. 열변형의 문제는 금속과 반응하지 않는 가스를 불어넣으면서 변형을 최소화하면서 진행한다.  시간당 용접하는 거리는 결정적인 변수다. 하지만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용접로봇을 아무리 잘 학습을 시켜도 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용접과정에서 (용접팁이 변하거나 조건이 변하면 공정을 멈추고 다시 작업해야 한다.) 그다지 신통한 돌파구가 나오지 않았다. 꾸준히 좋은 용접기계들을 사들여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돌파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 레이저 용접기가 나온 것이다. 다른 메이커와 마찬가지로 폭스바겐도 레이저를 투입하기 시작했으나 한정된 부분만 가능했다. 학습곡선은 빠르게 증가하지 않았다. 다른 메이커들도 레이저를 도입해서 필요한 부분에 사용했다.  현대자동차도 이미 90년대 중반에 티뷰론도 기존의 용접이 까다로운 부분에 레이저를 사용했다. (그리고 요즘의 현대 자동차는 레이저의 적극적인 도입을 검토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조직적으로 꾸준히 레이저의 사용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다. 레이저의 도입 댓수도 꾸준히 늘어갔다. 그러나 대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여전히 스포트 개소를 줄이면서 아크용접을 적용하였다. 용접과정에서 특히 용접봉이 철판을 관통하는 사태는 종종 일어났다. 그리고 용접면의 밀봉이 완벽한 것도 보증할 수도 없었다.  이 시기에 폭스바겐은 다른 아이디어를 냈는데 용접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아주 오래 전에  용접기가 시원치 않은 시절 차량 제작에는 용접뿐만 아니라 Brazing 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연도금판을 붙이는 방법에는 동합금 용접봉을 낮은 온도로 가열하여 붙이는 것이다. 

용접봉이 철판을 관통하는 사태는 철이 녹는 점보다 500도나 낮은 온도에서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다. 용접봉이 철판을 관통하는 사태는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용접가스의 제거와 용접똥이 튀는 일도 방지할 수 있었다. 브레이징은 에너지도 20% 적게 사용하며 아연판을 열로 완전히 태워버리지 않으니 재도색을 할 필요도 없었다. 원래 용접부위가 가장 먼저 변형이 일어나나 여기에 대한 추가적 조처도 최소화 되었다. 얇은 철판의 용접도 어렵지 않게 일어났다. 휠아치와 루프의 용접에 브레이징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문제는 강도였는데 예상보다 강도와 내피로성은 충분히 튼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학습곡선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스포트 용접의 개소는 다시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2000년대 초반에 들어 폭스바겐은 레이저 용접기를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매우 궁금해 했다고 한다.  레이저의 사용거리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아예 레이저로 철판을 가열해서 붙이기 시작했다.  레이저는 아크용접보다 정교한 조절을 할 수 있으나 경험곡선이 짧은 것이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날 폭스바겐은 이런 문제를 해결한 듯하다. 용접을 하는 레이저의 출력을 조절하여 용접도 ,브레이징도 , 절단도 시행할 수 있엇다. 

5세대 골프는 이런 신기술이 모두 적용된 차종이었다. 50여 미터를 레이저로 균일하게 용접하여 붙이고 20여 미터는 레이저로 브레이징하여 붙였다. 나머지는 과감하게 접착제로 붙였다. 그래도 스포트 용접개소는 수천개가 남아있다. 1/3로 줄어든 것이다. 강성은 크게 늘어났다. 지난번 적었다시피 전세대 대비 정적인 비틀림 강성은 80% , 동적 비틀림 강성은 15% ,  동적 구부리기 강성은 35% 증가했다. 이런 노력으로 골프의 차체는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평가에서 1995-1998는 “average" , 1999-2004는 "significantly better than average" 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2004 Euro NCAP에서 5세대 골프는 별 다섯 개를 받았다. 


GTI 버전  이야기

골프와 핫 해치 GTI 이야기


꽤 유명한 자동차광인 한의사선생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예전에는 골프 2세대 GTI를 가지고 있었고 4세대의 VR6 3.2 골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포르세 911을 몰다가 어느 날 모두 처분해 버린 다음 다시 푸조의 306 카브리올레를 사겠다고 해서 필자를 놀라게 한 사람이다. 가장 빠른 차종에서 빠르지는 않지만 밸런스가 뛰어난 차로 기종변경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원래 크고 거한 차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차에 대한 완벽한 컨트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필자는 코엑스 앞의 한의원을 지나가다가 올라가 커피한잔을 얻어 마시며 5세대 골프 GTI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예전 같이 타본 푸조 206 RC 시승에서는 좋은 평가를 내렸다. 2세대 GTI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 5세대의 GTI는 너무 커져서 일종의 버스 같다는 평을 했다. 골프GTI 동호회에서의 활동을 생각하면 의외다. 예상은 했지만 상당히 가혹한 평가였다.


확실히 5세대 GTI가 스파르탄하지는 않다. 크기와 무게도 많이 증가했다. 하지만 편하고 빠르다. 가속시간도 예전 GTI보다 빠르며 스티어링도 그다지 둔하지는 않다. 하지만 꽉 조이는 느낌은 없다. 듣고 있으니 수긍이 간다. 필자 역시 오래된 Mi16을 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국내에 더 오래된 차종인 푸조 205 GTi 가 있으면 Mi16을 타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205GTI를 타면서 엔진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205 GTI의 후손이 206RC다. 206RC는 이제 207RC로 대체되고 있지만 206RC의 인기가 더하다. RC의 유럽식 이름은 GTI 180 이다.


푸조 205GTI는 진짜 소형차이고 골프는 그보다는 조금 더 큰 준중형으로 분류하는데 원래의 골프 GTI는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다. 요즘의 골프는 준중형보다도 크다는 느낌이 든다. 그 점에서는 앞서 내린 평가가 맞다.  800Kg 정도의 차가 1.4톤으로 변했으니 많이 변한 것이다.  그점은 역시 작은 덩치에도 비슷할 만큼 무거워진 206 RC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그다지 귀한 차는 아니지만(하지만 나름대로 비싼 차다.) GTI 는 사실 특별한 컨셉으로 출발했다.  1세대 골프가 나오면서부터 바로 GTI가 나왔다. 당시에는 비슷한 차종이 없었으니 대단한 혁신이자 회사로서는 모험이었고 폭스바겐의 소수 그룹으로부터 시작했다.  해치백 소형차중에서 “화끈한(HOT)" 버전을 의미하는 핫해치라는 장르가 출발하는 시점이었다. 그 이후에는 여러 회사들이 해치백은 아니더라도 스포티한 버전을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버렸다.  BMW 에는 M3가 소형 3 시리즈의 차체를 이용하여 만들어지고 , 포드의 포커스와  푸조의 GTI 가 있고 시빅에는 R 시리즈가 있으며 그 외에도 많다. 그러나 처음에 강성이 비교적 강한 차체의 스포츠 버전을 만들어 보자는 시도는 GTI가 개척자라고 보아도 좋다. 골프의 어떤 모델들이 당시에는 없던 미래의 차 비슷한 것들을 들고 나온 사례 중에 GTI를 포함해도 좋을 것이다.


VW의 홍보자료는 이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이번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1회분에 맞게 줄여본 것이다. 일종의 변형이자 도용에 가까운 편집이다. 시작은 다음과 같다.


“골프 GTI는 현상이고, 상징을 담은 마크이고, 탁월한 디자인 기준과 금속 및 플라스틱으로 빚은 자동차 철학이다. 첫 GTI가 만들어진 데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중심에는 항상 시간과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GTI의 생산을 이끌어낸 "비밀조직"의 사람들이 있다. 이런 개발에 대한 지나간 이야기들 중 많은 수는 진실이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수는 변질되고 종종 잘못되기까지 했다. 분명한 것은 골프 GTI는 아주 적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천재적인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과 GTI에 대한 이야기다. “


이렇게 현란하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필자에게 없다는 것은 독자들도 알 것이다. 필자식으로 말하면 GTI의 핵심은 사람들의 달리기 욕망을 비교적 현실적인 가격으로 제시한 프로토타입이라는 점이다.  그전에는 작더라도 스포츠카와 일상적인 차의 구별이 확실했다. GTI는 이런 벽을 허문 것이다.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비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1973년 폭스바겐은 비틀의 스포티 버전을 출시했다. "옐로 앤 블랙 레이서"라고 불렸으며 검은 보닛과 엔진 커버, 조금 넓은 타이어(5인치→5.5인치), 스포츠 시트와 헤드레스트 , 적당한 가죽 스티어링 휠로 차별되었다. 기술적으로 이 차는 1,600cc 50마력 엔진을 얹은 옛 비틀과 다를 바 없었다. 비교적 평범한 출력에도 불구하고 이 "폭스바겐이 만든 공격적인 모델"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 비틀 모델은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2년분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회사 내에서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1973년 3월 테스트 기술자인 알폰스 로웬베르그(Alfons Lowenberg)는 연구개발(RD) 부의 몇몇 동료들에게 내부 메모를 전했다. 폭스바겐이 적당한 스포츠 모델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이었다. 폭스바겐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소비자들을 위한 현대적인 앞바퀴굴림 고성능차인 프로젝트 코드 EA 337(미래의 골프를 위한 내부 코드)이 개발 최종단계에 접어들었다. 결국은 골프라는 신형자의 스포츠버전을 만들자는 이야기로 개발 계획을 받아든 경영진은 난색을 보였다. 단지 섀시 전문가인 Herbert Horntrich와 개발 책임자 Hermann Hablitzel이 최소한 로웬베르그의 아이디어에 기본적인 관심을 보였다. 로웬베르그는 꾸준히 같은 생각을 가진 동료들을 찾았다. 예를 들면 마케팅 부서의 호르스트-디터 슈비틀린스키(Horst-Dieter Schwittlinsky)와 당시 폭스바겐 홍보 책임자였고 이전에 수년간 포뮬러 V 협회의 매니저였을 뿐 아니라 여가시간에 자동차 경주에도 출전했던 안톤 콘라드(Anton Konrad) 등이 특히 아이디어를 반겼다. 그는 또한 스포츠 모델이 회사 내에서도 극도의 비밀을 유지한 채 개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1974년 골프라는 이름으로 선보일 새 모델의 높은 개발비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짐이었다.  골프자체가 회사로서는 도박이었다.


콘라드는 '스포트골프' 작업 그룹의 비밀 개발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만났다. 맥주와 샌드위치를 나누며 공모자들처럼 가능성을 정리해 나갔다. 하블리첼은 이미 마음을 뚜렷하게 굳혔고, 로웬베르그와 호른틀리히가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돌처럼 단단한 섀시를 가진 시로코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그들은 서스펜션을 대폭 낮추고 시로코의 1.5리터 85마력 기본 엔진을 2단계 카뷰레터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난로 파이프와 닮은 배기 파이프로 씌워 100마력을 얻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차를 "으르렁거리는 괴물"로 기억한다. 비밀 팀은 곧 이것이 그들이 원하는 차가 아니라는 데에 동의했다. 스포트골프는 스포티하게 느껴지지만 점잖기도 해야 했다. 그래서 얌전한 버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결과물은 아주 과격하지는 않으면서도 여전히 매우 빨랐다. 모든 비밀조직원들은 이 모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고 용기를 얻었다. 개발자들은 개발 책임자인 에른스트 피알라(Ernst Fiala) 교수에게 스포티 카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의 생각을 물었다. 피알라는 "너무 비싸지 않나, 당신들은 모두 미쳤어"라며 결정타를 날렸다고 한다.


어쨌든 하블리첼과 동료들은 단념하지 않았다. 시로코를 바탕으로 한 스포트골프 프로토타입은 공식적으로 위장된 섀시 프로토타입으로 언급되었고, 비공식적으로 개발이 계속되었다. 로웬베르그가 엔진을 튜닝하는 동안 호른틀리히는 든든한 타이어에 맞춰 섀시를 조절했다. 205/60 HR 13 크기의 타이어는 당시로서는 포르쉐 911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독일 스포츠카조차도 1974년에는 185/70 타이어를 끼우고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택시들도 이런 적은폭의 타이어는 끼우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를 1975년 봄 폭스바겐 테스트 센터에서 경영진들에게 시연했을 때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피알라 교수도 시로코의 옷을 입은 스포트 골프를 받아들이고 승인을 했다. 5월 말, 공식적인 승인이 개발부서에 전해졌다. 골프의 스포티 버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동시에 마케팅부서는 스포티한 골프를 위한 좋은 시장 기회를 보았다.  폭스바겐 역시 다가오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관중을 끌어모을 차를 필요로 했다. 프로젝트는 갑자기 모든 측면에서 활력을 얻었다. 최고의 스포츠 특성을 가진 야수에서 점잖고 편안한 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팅을 한 여섯 대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다. 책임 디자이너인 헤르베르트 샤퍼(Herbert Schafer)는 스포트골프를 허약한 라이벌들과 구별할 수 있는 모든 작은 세부 디자인을 책임졌다. 예를 들어 라디에이터 그릴 둘레의 빨간 띠, 뒷 유리의 넓은 무광 검정 프레임, 검은 루프 라이너, 골프공 모양의 기어 노브와 체크 무늬의 시트 커버 등이 있었다.


새로운 테스트 매니저인 헤르베르트 슈스터(Herbert Schuster)는 즉시 섀시 개발에 최우선권을 주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그는 휠의 너비를 6.0인치에서 5.5인치로 줄이고 타이어 크기를 175/70 HR 13으로 줄였다. 그는 또한 앞 뒤 차축에 스태빌라이저를 더하고 편안함과 스포티함을 완벽하게 조합한 스프링과 댐퍼 구성을 개발했다. 아우디와의 협력으로 최신식으로 만든 1.6리터 연료분사 엔진은 110마력의 출력을 냈다.


이전의 비밀 팀은 그들의 작업을 스케줄에 맞춰 끝냈다. 1975년 9월 11일 46회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일반인들에게 문을 열었을 때, 폭스바겐 스탠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골프 GTI 스터디(studie)의 데뷔를 반겼다.  "지금까지의 폭스바겐 중 가장 빠른 차"라는 문구는 광고를 돋보이게 했고 과장이 아니었다. GTI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까지 9초만에 가속해 크고 비싼 차들을 추월해 나갔다. 조심스럽게 발표된 "1만3,000 마르크 이하"라는 값은 여전히 가장 비슷한 독일 라이벌들보다 5,000마르크 이상 저렴했다. 결과적으로 박람회의 방문자들은 경영진이 5,000대의 특별한 차를 만들지 않을 수 없도록 감동시켰다.


1976년 중반 드디어 런칭했을 때 GTI는 1만3,850마르크였다. 딜러들은 첫해 예정된 판매의 10배를 팔았다. 골프 GTI를 추월하는 것은 빠른 차종들에게 일종의 스릴이었다고도 전한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구입가능한 범위의 실용적인 수퍼카가 탄생한 순간이기도 했다.


강남의 길바닥에 자주 보이는 골프 GTI는 이런 식으로 태어나 6세대가 되었다. 특별한 차이자 기념비적인 차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차이기도 했다. 비슷한 세그멘트에서 푸조의 205GTI가 나오기전까지는 경쟁자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졌다. 차들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좋아졌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던 호시절은 지났으며 다른 차들의 좋은 스포츠버전 역시 너무나 많다. 하지만 스포티한 차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역시 많기 때문에 이런 틈새시장은 계속 진화한다. 필자도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5세대와 그 이전 세대의 골프GTI를 하나씩 갖고 싶지만 장소와 비용과 시간 때문에 저지르지 못한다. 아무리 차를 좋아해도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소장하고 싶은차 10개의 리스트중 다 몰아보긴 했지만 2개만을 가져보았을 뿐이다. 차도 어쩌면 일부일처제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리스트는 자꾸 변하고 길어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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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7 08:43

아연도강판에 용접대신 brazing 적용 (옛날 기사)

반드시 옛날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폭스바겐은 차체를 강하게 만드는 과정의 일부로 구리의 합금으로 차를 땜하는 방법을 광범위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차를 납땜하듯 만드는 것으로 놋쇠땜질(brazing)은 용접이 아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아크웰딩하다가 그 다음에는 레이저로 땜질하기 시작했다. 골프차체의 놀라운 강성은 이런 노력들의 합이다. 


 

Brazing Instead of Welding for Galvanized Steel

In auto-body construction, which mainly uses light-gauge galvanized steel sheets, metal inert gas (MIG) brazing is the ideal joining technology. In fabricating the body of Volkswagen's best-selling Golf, brazing proved to be an economical solution as well.


VW uses a MIG brazing process in the body shops at its Wolfsburg (Germany) plant. The plant originally intended to use metal active gas (MAG) welding in the production of the Golf. However, preliminary trials conducted by VW production engineers showed that MIG brazing met the requirements for strength and stability.

Nevertheless, VW decided to go ahead and deploy the already-planned-for Fronius MAG welding power sources. It was then only a matter of changing over their processing parameters and characteristics to a dependable MIG brazing process.

Limitations of MAG welding

Robot-guided MAG welding of galvanized sheets in the 0.7 to 1.5 mm range brings with it a number of problems. One of these is the risk of burn-through. On light-gauge sheets, holes in the weld-seams are very difficult to weld closed. The necessary remedial work costs time, space, and labor. It also reduces reproducibility, quality, efficiency, and the potential level of automation.

A further problem results from the high operating temperatures in MAG welding. The low vaporization temperature of the zinc coating allows zinc-free zones to develop around the edges of the weld, and these are susceptible to corrosion.

Another problem is weld spatter, which necessitates frequent cleaning and maintenance of the welding gun and reworking of the welded areas.

Advantages of MIG brazing

In contrast, VW found that MIG brazing offers a broad spectrum of advantages.

Low temperature & spatter. MIG brazing uses a copper-silicon alloy as filler metal. The working temperature of the filler metal is around 1000캜 (1770캟), which is some 500 degrees below the fusing temperature of the steel base metal. This means that the worst that can occur is minor superficial melting of the steel sheet; melt-through can practically be ruled out.

Other economic advantages derive from the fact that MIG brazing is almost spatter-free. Far less cleaning and service work is needed, saving much more than the process-specific extra costs for the copper filler metal and argon shielding gas.

Low distortion. Another advantage of the new application was reported by Dirk Seifried, the VW welding engineer responsible for auto-body production planning. "Because there is around 20% less energy input per unit length in MIG brazing than in MAG welding, less heat enters the material and the risk of distortion is greatly reduced." His enthusiasm is easy to understand when one considers that distortion or, even worse, dents and bulges in the sheet metal are every auto-body worker's nightmare.

Corrosion resistance maintained. In MAG welding, the zinc layer alongside the weld seam burns off. Without post-weld treatment, this unprotected zone -- including the weld seam itself -- would be prone to corrosion. But in MIG brazing, this is not the case. Owing to the lower working temperature, less zinc is burned off, and the copper filler metal is in any case inert to corrosion.

Proven strength. Seen in conventional and theoretical terms, a standard welded seam ought to result in a higher-strength joint than a brazed joint. However, the experience that has been gained in practice suggests that things are not that simple.

"On the thin, unalloyed and low-alloy deep-drawing sheets that we use, the joint strength of a MIG-brazed seam is greater than that of the base metal," said Seifried. Any failure that occurs, if it occurs at all, will be in the base metal, as testing has confirmed.

Automation potential. For VW, a key criterion influencing the choice of suitable MIG brazing equipment was that the power source should be controllable and programmable (as is the case with the Fronius equipment).

Here too, both the VW engineers and Fronius see further scope for rationalization. As Dirk Seifried reported: "MIG brazing is a good thing, and it has helped us to boost the level of automation in our production operations." And it will no doubt continue to do so.

--Heinz Hackl

Heinz Hackl is with Fronius International (Wels, Austria). The company's US contact is Franz Dietachmair at Fronius USA LLC (Brighton, MI; dietachmair.franz@froni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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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1 12:10

VW 비틀이야기- 작은차 이야기

불황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던 2008년 초에 어떤 신문에 적었던 자동차 컬럼을 정리하려고 올려본 것이다. (완성본과는 거리가 멀다.) 


글을 보며 참 여러가지 컬럼을 썼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중에 정리하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잘 쓰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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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에 온 니싼의 카를로스 곤(Ghosn) 회장은 고려대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했다고 한다. CEO의 역할과 삼성의 자동차 산업 참여에 대한 곤 회장의 평가에 대한 뉴스들이 우리나라 신문에 소개되고 있었다. 앞의 주제들은 큰 이슈가 안되지만 강연 전의 다른 회의에서 언급한  “미국 자동차 산업이 불황에 들어갔다”라는 언급이 이 강연을 탑뉴스의 일부로 만든 것이다.

 

발언의 요지중 외신이 민감 반응을 보인 내용은 :

자동차 업계는 광석과 금속의 가격이 상승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고 미국은 사실상 불경기 사이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불경기는 아닐지 몰라도 자동차 산업은 불경기다. 앞으로는 이머징 마켓에 주력해야 한다.

 

외신과 국내언론의 보도는 조금 시각이 달랐다. 업계는 너무 민감한 뉴스는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을 걱정과 불안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 곤의 발언 내용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반응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 빌게이츠나 잡스가 IT산업이 불황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업계가 곤란해진 것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고장조차 나지 않은 차들이 멀쩡히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차의 구매력을 자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경기가 어려워질 것 같아 보이는 상황에서 지갑을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한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 메이커들은 선진국의 대안인 이머징 마켓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살아남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차의 트렌드가 변하게 될 것인데 운이 좋으면 소비자들은 경제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차들을 보게 될지 모른다.

 

실제로 과거에도 그랬다. 70년대 두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차들의 크기와 무게는 크게 줄어들었다. 연비가 나쁜 차들은 점차 없어지고 일본과 유럽의 차들이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안정성이나 편의성도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 지금은 당연한 일들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일종의 혁신이자 근본적 변화였다. 업계는 변해야 했지만 소비자들도 변했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러니 기다리고 있으면 업계가 답을 낼 것이다. 답을 낼 수 없다면 소비자들을 재교육할 것이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필자의 머릿속에는 몇 개의 아이콘적인 차종이 떠오른다. 그중의 하나가 폭스바겐의 클래식 비틀이다. 비틀과 비틀의 문화는 너무 다른 차들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빛을 잃었지만 사람들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수십년 같이했다. 경제성과 자동차 문화에 대해 알려주는 교과서 같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가장 기록적인 사실은 생산이 1938년에 시작되어 중지되는 2003년까지 같은 디자인으로 생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차종은 장수모델이라도 몇 번의 대폭적인 디자인 변경이 있다.) 비틀은 전쟁과 몇 번의 불경기 그리고 활황을 견뎌냈다. 수요는 계속 존재했고 요즘도 타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차들이 굴러다닌다.

 

이 차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러니 한번 비틀과 비교해서 요즘의 차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새롭고 뛰어난 성능을 소개하는 것은 자동차 잡지들의 몫이다. 다양한 차를 많이 파는 것은 기업들의 몫이다. 이런 영양가 없는 생각과 글을 쓰는 것은 필자 같은 몽상가들의 영역이다. (필자는 에너지가 부족하고 환경이 나빠진다고 하면서도 재화를 마구 소모하지 않으면 잘 돌아가지 않는 경제 현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비틀의 시작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위한 차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독일 국민들이 당시 동경의 대상이던 자동차를 누구나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게  실용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미 미국에는 국민차는 아니지만 T 형 포드 같은 차들이 있었다. ) 1931년부터 포르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차”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몇 개의 프로토타입을 거쳐 최종적으로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정책이기도 했던 국민차 (volks - wagen , people's car라는 뜻이다.)로 채택된다. 소박한 자동차로 두명의 어른과 세명의 어린 아이를 태우고 100Km를 낼 수 있어야 했으며 당시 990 마르크정도의 가격으로 당시 주당 30마르크 정도를 받는 노동자가 저축하여 살 수 있는 수준이어야 했다. 히틀러의 조건들은 명확한 설계를 위한 필요조건이 되지 못했으나 1931년의 오리지널 설계는 이미 최종적인 생산버전의 설계와 비슷했다. 그 후 몇 년의 준비 끝에 상업적 대량 생산의 설비를 준비하자 2차 대전이 발발했다. 설비는 군수차량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변경되고 민생용 차량은 전쟁이 끝난 후에야 생산할 수 있었다.

 

높은 차제 , 풍뎅이를 연상시키는 차체 , 고도의 안전성 , 낮은 마력수 ,  전복되어도 안전한 차체 , 공냉식 엔진과 황당할만큼 쉬운 정비 , 덩치에 비해 가벼운 무게 ,  사막이나 극지에서도 달리고 엔진오일을 30년간 갈지 않았다는 실제 일화 , 그리고 광고의 새로운 지평을 연  광고시리즈 . 무엇보다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그 디자인 이미지. 포르세 스포츠쿠페의 실제 조상 . ...

 

(VW의 클래식 비틀에 대한 글들을 적으며 요즘의 최신 차종과 비교하면서 생각해 볼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슈마허가 쓴 책으로 세상의 자본 집중화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구호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책은 당시(그리고 현재)의 경제가 지속가능(sustainable)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 책이다. 오일쇼크 당시 많은 사람들이 슈마허의 강연을 들었다. 당시는 새로운 대안들이 활발하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Small 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으로 사실 지금도 개인들은 크다고 말할 수 없다. 거대한 기업이나 자본의 집중에 의한 산업은 빙산과 같다. 이 시스템을 돌리기 위해 교육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은 근로자를 만들고 또 생산할 시스템을 만들기도 한다. 소비자 역시 교육에 의해 세뇌된다. 교육은 소비 지향적인 수많은 사람들을 붕어빵처럼 양산한다. 오늘날의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극심한 경쟁도 시스템이 원하는 바이다. 체제 순응적이고 놀라울만큼 소비적이며 별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생각이 없으면 행동도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변하는 것은 시스템이 잘 못되어 간다고 의심을 하기 시작할 때나 변하지 않으면 안될 때 정도라고 보아야 한다. 어쩌면 필자를 포함하는 요즘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슈마허의 비판 가운데 근대 경제학이 생활수준을 소비하는 양으로 평가하는 경향에 대한 집중적인 언급이 있다. 사람들은 경청했다. (별로 바뀐 것은 없지만)

 

선진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20-30대가 되었을 때 오일 쇼크가 왔고 시회의 첫발을 딛던 당시의 경제 상항은 극히 좋지 않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실감이 나던 시절이라고 한다. 이들의 얇은 지갑을 덜어준 하나의 아이콘이자 발이 폭스바겐 비틀이었다. 무게가 2-3톤씩 나가고 배기량도 크던 당시의 차들에 비하면 정말로 효율적이었다. 무게도 가볍고 잘 만들어졌으며 튼튼했고 정비도 쉬웠다. VW은 차들이 결코 궁상맞지 않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광고에도 주력했다.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하던 VW의 광고들은 지금 보아도 걸작이다. 비슷한 성격의 자동차로는 로버의 미니 (지금의 BMW의 미니의 전신으로 훨씬 작았다.)가 있다. 이들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당시의 신차가격보다 상태좋은 중고차들이 훨씬 비싸다. 30년이 지났지만 만달러를 넘어가는 차들은 이베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 결과 20세기의 가장 인상적인 차에 시트로엥 DS , T형 포드 , 미니 , 포르세 911 같은 차들과 나란히 선정되기도 했다. 차들이 당시의 문화와 경제를 반영하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의 대형차들은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수백 Kg 씩 감량을 했고 배기량도 낮추었으며 연비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유럽과 일본 차들의 약진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은 이들과의 경쟁에서 잘 안팔리는 차로 변했다. (그래서 70년대 중반 래빗이라고 부르는 골프 시리즈로 이어졌다.) 요즘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번 말한 것 같은 니싼의 카를로스 곤 회장의 발언을 포함해 뉴스위크 표지로 인도 타타 자동차의 나노가 등장한 것 같은 현상이다. CNN Money에는 벤츠의 스마트가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그러니 요즘의 문화 아이콘이 새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겠느가? 이들을 쓰는 현재 원유는 배럴당 103달러 정도이고 휘발유는 리터당 1800원이 될지도 모른다. 무언가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시대를 한참 앞서간 비틀은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존재였다. 독자들이 Youtube.com에서 “beetle vw commercial" 또는 “beetle vw classic" 같은 단어로 검색하면 수많은 비디오 클립들을 볼 수 있는데 어떤 것들은 경탄을 넘어 엽기적이기도 하다. 언덕에서 차량이 굴러 전복되어도 지붕이 내려앉지 않고 다시 굴러가는 광고라던가 볼트 5개를 풀면 엔진을 분해할 수 있는 간단한 정비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몇 명이 리프터 없이도 차를 분해하는 장면도 나온다.

 

필자도 몇 번 분해해 보면서 경탄했던 것은 더 이상 간단할 수 없는 간단함이다. 엔진은 공랭식으로 가볍고 간단하다. 수평대향의 H 형 으로 실린더 4개가 놓여있다. 케이블 몇개와 연료호스가 연결의 모든 것이다. 이것이 엔진룸의 전부다. 젠(zen 禪 ) 스타일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엔진에서 나오는 20마력부터 60마력 정도의 출력으로 만족할 수만 있다면 너무 간단해서 거의 고장날 것이 없는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출력 범위가 초저가차량들의 범위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오늘날의 초저가 차들과는 달리 비틀은 매우 튼튼했다.)   이 정도의 출력이라면  현대식의 첨단 디자인으로 연비와 출력을 모두 개선 할 수 있겠지만 메이커들은 관심이 없다.  공냉식을 유지한다 해도 당시보다 좋은 솔루션은 넘쳐나고 있다. 디젤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차의 구조를 재설계하고 더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 수도 있다.  복합소재를 쓸 수도 있다.  

 

갑자기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미니멀리즘에 빠져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실 작고 간단한 것이 좋을 때도 많다.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차들의 내구성은 경이적이었다. 엔진 오일만 갈면 몇만 킬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달릴 수가 있었다.  주인이 엔진오일을 가는 것을 몰라서  30년동안 엔진오일을 갈지 않고 달린 비틀도 있었다.  엔진 역시 처음부터 생산의 종료까지 기본 디자인은 바뀌지 않았다. 그 근간은 단순한 것이었다.   차체도 엔진도 디자인의 경이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 엔진들은 포르세의 356을 거쳐 911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런차로 사람들은 여행도 다니고 출퇴근도 하고 전쟁을 치루기도 하였으며 사막이나 극지를 다니기도 했다.  미술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딱정벌레라는 애칭으로 사랑받기도 한다.

 

 

<사진 1938년도에 나온 초기의 비틀 - 65년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비틀과  작은 차들

 

아마 요즘같이 자동차의 패러다임 혼선이 오는 시절도 없을 것이다. 어떤 변곡점에 온 것 같다. 변곡점이 오면 기존의 이론들로 설명이 잘 되지 않는 현상들이 늘어난다.

그중의 하나가 메이커들의 순위매김이다. VW 그룹이 가장 잘나가는 회사로 자리잡았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다른 회사들의 실적이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VW의 판매랭과 이익은 증가했고 주식값도 올랐다. VW에는 대형차가 별로 없다. 대부분이 실용적인 차들이다. 그렇다고 아주 소형차들도 없다. 적당한 사이즈의 차들이 있고 몇 년간 진지하게 개선을 추구했다. 소비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폭스바겐이 약진하는 이유는 실제로 차를 뜯어 놓고 보면 알 수 있다. 불필요한 유지관리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용적이고 성능이 좋지만 고장도 안나는 것은 큰 장점이다. 많은 조사와 절충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소형차 , 특히 저렴한 소형차들의 약진이다. 얼마전 발표된 인도의 세계최저가 자동차 나노는 다른 메이커들의 벤치마킹을 일으켰다.(벤치마크는 따라하기를 일으킨다.) 뉴스위크의 표지로도 등장했다. 이머징 마킷에서는 분명히 어떤 붐을 일으킬 것이다. 아주 작은 차들은 이제 하나의 대세이자 문화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작은차 , Think Small , Small is Beautiful, Small is Big 등등의 광고문구들이 나올 것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VW의 비틀은 하나의 중요한 기술 유전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소형차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VW의 비틀은 사람들이 소형차를 싫어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광고를 만들어 냈고 그 광고들은 전설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다. (youtube.com에서 vw beetle ad 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라.) 작아서 불안하게 보일까봐 차의 안전에 대한 여러가지 홍보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작은 차들은 당시에도 비틀만 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틀만큼 지속적으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낸 차종도 없었다. 그리고 차들의 이미지나 기억은 아주 오래동안 지속된다. 비틀의 인기는 결국 뉴비틀을 만들어 낸다. 뉴비틀은 비틀만큼 혁신적이지 않지만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만은 남아있다. 비틀은 7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이콘이 되었다.

60년대의 이코노미카 , 경제적인 차는 사회가 부유함과 풍족함을 추구하면서 점차 그 가치가 퇴색되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60년대 까지도 유럽은 전쟁의 복구가 필요한 상태였다. 차는 필요했지만 경제적이어야 했다. 경제적인 차는 사실 작은 차라고 볼 수 있다. 엔지니어링의 대약진이 없는 한 큰 차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크고 무겁지 않은 차들은 아마 앞으로 많이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다시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 기름 값을 배럴당 150불에서 200불 정도로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증가하고 있다. 식량을 에너지 투입으로 만드는 (물류 , 비료 , 약품 , 온도 ) 요즘의 농업은 여러 가지 변화에 직면한다. 2차 산업이나 3차 산업의 위상과 의미 자체가 변하는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가는 겪어보아야 할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200달러 시대에는 고중합 플라스틱은 의료용이나 정밀기계용으로만 사용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너무 심한 기우인가?) 아무튼 이럴 때는 이코노미가 최고다. 갑자기 늘어나는 소형차는 사람들의 미래 예감을 반영한다. 다소 우중충하지만 메이커들이 폭스바겐 비틀의 예전 광고 캠페인을 요즘 버전으로 만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필자의 호기심은 그동안 별로 관심이 없던 소형차에 쏠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타본 차는 Smart 와 미니 그리고 단종된 클릭 같은 것이다. 물론 푸조 207이나 다른 소형차들은 거의 타 보았다. 2인승 스마트는 너무 작아 차라고 보기에도 어렵지만 예상보다 잘 굴러간다. 주차는 거의 압권이다. 아마 도시에서만 타고 다닌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듯하다. 디자인은 원래 이름 자체가 예술적인 차를 만들기 위한 ART Car에서 나온 것이니 만큼 나무랄 데가 없다. 1990년대의 시계를 만들던 스워치 그룹은 젊은 층을 겨냥한 혁신적인 특징을 갖는 차를 만드는 목표를 가졌다. 시트로엥의 2CV 같은 차를 만들어 문화 아이콘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에는 폭스바겐 그룹과 같이 일을 만들어 보려 하였으나 의견이 맞지 않아 다임러-벤츠 그룹과 같이 차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Swatchmobile" 이라는 처음의 이름에서 Swatch Mercedes ART 라는 컨셉카처럼 출발했다. 최근의 관심증가로 cnnmoney에서도 다루었다. “smart for two smart for few”라는 제목으로 크게 다룬 것이다. 보통은 베스트 10애 들더라도 1페이지도 할애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10페이지 분을 다룬 것이다. 그리고 wall street journal 에서도 스마트를 중요한 차로 다루었다. smart 평가의 기사의 끝맺음은 이차의 선택이 결국 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마 조금 더 큰 차가 실용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차에는 어느 정도 크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작은 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커다란 변화의 깃발이 보인다.

스마트에게 영감을 준 프랑스의 차 시트로엥의 2CV는 2기통 공랭식 엔진을 탑재한 차로 40년대 말부터 90년대 까지 생산된 작은 차다. 출력과 차체는 비틀보다도 저렴했으며 작았다. 무엇보다도 극도의 경제성으로 서민의 발 역할을 했고 마찬가지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원래의 디자인 컨셉은 4개의 바퀴를 갖는 우산이었다. 차는 극도로 작았고 당시 농촌인구가 많던 프랑스에서 농부가 100Kg 정도의 짐을 싣고 60Km 정도로 달리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발이 되자마자 전쟁이 났고 독일에 점령당한 공장의 관계자들은 혹시 전쟁에 이용될지 모르는 이 차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픽업으로 위장하거나 땅에 묻거나 없애 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전후에는 엄청나게 팔렸다. 이정도의 가격에 차를 공급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기도 했다. 2CV의 무게는 500Kg 중반 정도다. 이탈리아에는 피아트의 Fiat 500이 사람들의 발이 되어 주었다. 이들은 모두 RR 디자인으로 가장 간단한 엔진으로 차를 구현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이코노미 카의 역할을 다했다.

이런 차가 미래의 관심을 받는 차라면 조금 슬프기도 하다. 어려운 시기로 본다면 작은 차가 대세다. 차는 궁상맞건 여유가 있건 당시의 정서와 상황을 잘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만약 소형차들이 대세가 될것처럼 보이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진 시트로엥 2cv>



비틀과 suv

 

요즘은 글을 너무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독자들이 작은차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다른 매스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계속 많은 미디어들이 작은 차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글을 쓰기전에 읽은 내용은 작은차의 충돌 안전성(http://money.cnn.com/galleries/2008/autos/0803/gallery.small_car_safety/index.html)을 다룬 CNN의 기사였다. 도대체 이런 글을 실을 매체가 아닌데 계속 글들이 실리는 것을 보면 분명히 어떤 변화를 암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충돌시 크럼플 존을 생각하여 덩치는 약간 크지만 무게는 가벼운 차가 앞으로의 대세일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동안 아무도 이 문제에 주력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차의 연비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별로 관심이 없던 언론들이 MPG (mile per gallon)을 중요한 이슈로 들고 나오는 것은 엄살이 아니다. 힘을 중시하는 문화 , 차의 가속력은 분명히 커다란 매력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미국과 같은 나라의 문화자체가 크고 마력이 좋은 차를 선호한다. 그러나 분명히 요즘 변화가 오고 있다. SUV나 대형차들의 약세가 두드러진다. 사람들은 간사하여 상황이 바뀌면 과거의 드림카들을 worst 10에 뽑기도 한다. 요즘만 그런 것도 아니고 항상 그랬다.

다시 폭스바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폭스바겐의 생산 코드명은 포르세60이었다. 그런데 비틀의 디자인은 체코의 Tatra 자동차 회사의 모델 T97에 크게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필자에게는 거의 비슷한 자동차로 보였다. 딱정벌레 디자인의 후륜구동 수평엔진은 이미 T97에 구현되어 있었다.) 히틀러의 독촉아래 포르세는 타트라의 Hans Ledwinka의 어깨너머로 디자인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전쟁이 끝나고 몇 차례의 소송 끝에 폭스바겐은 배상금을 물어주는 것으로 매듭지어야 했다. 설계의 천재는 어쩌면 포르세가 아니라 타트라의 디자이너였던 셈이다. 포르세 60은 전쟁이 시작되어 생산할 수는 없었으나 준비된 생산설비를 군부가 요구하고 있었다.

전시에는 폭스바겐이 큐벨바겐(코드네임 82)이라는 이름으로 디자인을 바꾸어 생산되고 있었고 미군의 지프차와 전쟁에서 맞붙었다. 차체와 엔진은 그대로였다. 엔진은 23마력 정도밖에 안나왔으나 1400cc 45마력인 1400Kg 인 미군의 지프에 비해 반정도로 가벼웠고 연비는 훨씬 좋았다. 연비는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전쟁터에는 주유소가 없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전쟁터에서 라디에이터가 손상되면 달릴 수 없는 수냉식 엔진에 비해 공랭식의 야전성은 두드러지게 좋았다. 혹한이나 혹서에서도 운용이 가능했다. 4륜으로 만들기 위해 무게를 크게 증가시키는 것보다 LSD 라는 간단한 장치를 붙인 ZF사의 기어박스는 야전성을 증가시켜 달리지 못하는 곳도 없었다. 포털기어라는 장치를 붙여 지상고도 높았고 야전에서는 밑이 복잡한 미군의 지프보다도 밑바닥이 한 장의 철판처럼 된 큐벨바겐이 더 유리했다. 수렁에 빠져도 썰매처럼 미끄러져서 쉽게 탈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간단하고 가벼운 것은 실전에서도 유리했다. 큐벨바겐을 노획한 연합군은 실전 운영에서 지프보다 우수하다고 판정했다. 지프처럼 잘 뒤짚히는 일도 적었다고 한다. 전후의 큐벨바겐은 181과 182라는 코드로 1980년대 중반까지 생산되었다. 몇 만대가 나토의 주력 차량으로 활동했다. 지겨울 정도로 오래 사용된 것이다.

지프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SUV들은 예전보다 한층 더 커진 몸매를 자랑한다. 그만큼 기름도 더 먹는다. SUV는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랜드로버가 지프차의 차체와 엔진을 이용하여 영국의 농촌이나 야외에 맞도록 개선되어 온 차종이다. 별로 큰 시장이 아니었지만 메이커들의 비싼 차 팔기전략(승용차의 마진은 적다)과 사람들이 안전에 대한 환상과 레저와 여행의 이미지로 중요한 시장이 되었다. 문제는 차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으로 2톤이 넘는 차량들이 많고 배기량도 커서 기름값이 오르면 유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사실 도시인들은 SUV가 특별히 쓸모가 없다. 비싼 차량의 가격도 별로 좋은 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야외에서도 별다른 장비가 필요없었다는 사실은 큐벨바겐 같은 케이스에서도 입증된다. 물론 요즘의 지프들은 과거보다 성능이 좋다. 그러나 연비에 이르러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일부 차종의 SUV들이 중고 시장에서 헐값이 되어 버린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야외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산업적인 용도나 야외에 레저 장비를 싣고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면 불필요한 차들이었다. 사람들이 광고에 얼만큼 빨리 세뇌되는 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역자적으로는 2톤이 아니라 수백 Kg 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평상시 무거운 SUV는 1톤 정도를 더 짊어지고 다닌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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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1 02:04

현대:미국의 새 자동차 강자

현대자동차에 대해 cnnmoney에서 다룬 글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점유율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자본 조달(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릅니다. 

어제 토요타의 캠리가 상륙을 했는데 워낙 럭서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캠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세탁소 아저씨들도 혼다 crv를 타고 다니는 강남에서 아주 흔한 차가 될지 그냥 캠리구나 하고 끝날지는 잘 모릅니다.  수입차 업체는 모두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cnnmoney는 현대차를  중요한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Hyundai: The newest U.S. auto power

South Korea's Hyundai Motor is now a force to be reckoned with in the battered U.S. auto market as more consumers flock to its Hyundai and Kia br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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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Isidore, CNNMoney.com senior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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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yundai Genesis is the automaker's first entry into the luxury market.

NEW YORK (CNNMoney.com) -- In a year of unprecedented turmoil for the U.S. auto industry, one major car maker has emerged as a winner. And that company isn't based in Detroit, Japan or Europe.

South Korea's Hyundai Motor Group has gained significant ground against its more established rivals this year. In fact, the company, which has separate operations for its Hyundai and Kia brands in the U.S., is the only one to report sales growth this year.

U.S. sales for General Motors, Ford Motor (FFortune 500) and Chrysler Group, as well as Japan's Toyota Motor (TM), Honda Motor (HMC) and Nissan (NSANY), are all down between 25% to 50% from a year ago. But combined U.S. sales for the Hyundai and Kia brands are up 2.6%.

As a result, the two brands have picked up 2.2 percentage points of market share during the first nine months of 2009. Hyundai and Kia now combine for 7.4% of the U.S. auto market.

That puts Hyundai Motor Group just ahead of Nissan as the sixth-largest automaker in terms of U.S. auto sales. And the Korean automaker is rapidly closing in on Chrysler, which now has just a 9.2% share of the U.S. market.

"They're definitely considered one of the major automakers today, which was definitely not the case this time last year," said Jesse Toprak, vice president of industry trends for car pricing tracker TrueCar.com.

So how has Hyundai become such a significant threat to Detroit's Big Three and the Japanese auto giants?

The right cars at the right time

Industry experts said that Hyundai has primarily been a beneficiary of the economic downturn.

High gas prices steered buyers away from the pickups and SUVs that had been a mainstay for Detroit's Big Three to more fuel efficient cars that are Hyundai's specialty. That trend accelerated thanks to this summer's popular Cash for Clunkers program, which gave buyers money to buy a new car if they traded in their old gas guzzler.

Hyundai's and Kia's combined U.S. sales leapt 30% over the course of July and August compared to a year earlier. The rest of the industry suffered a 7% decline in sales over those two months -- despite a boost from Cash for Clunkers.

The company also has been able to steal share because its vehicles typically cost less than similar models from rivals. Lower-priced vehicles obviously appealed to buyers squeezed on credit or worried about their jobs.

That has helped Hyundai steal share not just from its troubled Detroit rivals, but also from Toyota and Honda -- despite these Japanese automakers' similar focus on smaller cars.

"Fundamentally the market has come to them," said Jeremy Anwyl, chief executive officer of auto industry tracker Edmunds.com.

But now that Cash for Clunkers is history and many economists are talking about an end to the recession, will Hyundai continue to gain ground? Company officials said that it will be a challenge but expressed confidence.

"We've done a great job of lifting our brand this year. We're on lists we weren't on before," said Dave Zuchowski, vice president of U.S. sales for Hyundai. "But we're going to keep our foot on the gas. We have a lot of work to do."

Zuchowski admits that Hyundai uniquely benefited from the economic downturn and the hit that the rest of the auto industry took. He compared it to the effect that the oil shocks of the 1970s and early 1980s had on helping the Japanese automakers to establish themselves with U.S. buyers.

But Hyundai also made some savvy moves to take advantage of the trends moving the market in its direction.

Increased production and more advertising = higher sales

In January, the company rolled out its Hyundai Assurance program, which allowed buyers who lost their jobs to return their cars without penalty. A month later, Hyundai added a new wrinkle to the program. The company agreed to cover three months of payments for buyers that were looking for work.

The program helped drive up awareness of the Hyundai brand. GM and Ford Motor (FFortune 500) eventually came out with their own version in response to Hyundai's success.

Hyundai also did a better job than most of its rivals of preparing for demand from Cash for Clunkers. In the spring, as many U.S. auto plants were idled due to weak sales, Hyundai raised production at its U.S. plants from four days to five to give it adequate supplies in anticipation of the program.The company also guaranteed its dealers they would get the up to $4,500 payments per car sold under Cash for Clunkers directly from Hyundai, rather than having them wait for reimbursement from the government.

That turned out to be a smart move. Dealers for many of Hyundai's competitors ran into a cash crunch due to slow government payments, which limited the ability of some rivals to fully reap the benefits of the program.

Hyundai has also been taking advantage of the troubles facing General Motors and Chrysler. The company has grabbed dozens of U.S. dealerships or facilities cut loose by GM and Chrysler as part of their bankruptcies.

Experts say that Hyundai may also get a lift as GM drops its Pontiac and Saturn brands in the coming months. According to research from Edmunds.com, people who've bought Pontiac or Saturn models in the past have also looked at Hyundai models before making their purchase.

Hyundai has stepped up its marketing efforts as well -- and at a time when many competitors were pulling back on how much they spend on promotions.

The company advertised during the Super Bowl for the first time ever in 2008 and did so again this year. The company also had a commercial during this year's Academy Awards. Zuchowski said Hyundai is looking for more high-profile sponsorship opportunities going forward.

What's next?

Experts almost universally praise Hyundai for the success of its fuel-efficient Hyundai and Kia vehicles.

But even as many American consumers continue to shift to smaller cars, experts say that Hyundaihas the opportunity to grab even more market share if it sold more trucks.

Light trucks still account for nearly half of U.S. auto sales. Hyundai has limited crossover and minivan offerings and has less than a 5% share of the light truck market.

There have been rumors that Hyundai is planning to introduce a pickup offering in the future. Zuchowski would only say there are no immediate plans for such a truck.

The company also has only one luxury vehicle, the Hyundai Genesis. By way of comparison, most other automakers have a full lineup of cars marketed under separate luxury brands.

Some experts say that Hyundai may need to come out with its own separate luxury brand if it is going to compete effectively in that higher-profit part of the market.

"Luxury buyers buy image, and the image of Hyundai is not on the short list for most luxury buyers," said Toprak. "You're going to have a tough time selling a $50,000 Hyundai, even if the car is worth that kind of money."

Still, experts say that Hyundai and Kia have a solid group of new cars ready to hit the market in the next few years, such as the redesigned versions of Hyundai's Santa Fe crossover and Sonata sedan and Kia's new Soul and Forte small cars.

"The early signals from their product pipeline is they should be very competitive," said Jeff Schuster, executive director of global forecasting for J.D. Power & Associates.

Schuster added that as long as the company continues to do what it has been doing, Hyundai should be able to keep gaining market share. And that could mean that the once little South Korean car company may become an even bigger thorn in the side of both Detroit and Japan. To top of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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