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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19:58

펄프픽션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펄프 픽션은 한 10년 정도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처음부터 보고 싶었지만 한참 지나서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새로운 미디어의 방식으로 많은 글들이 이 영화를 지목했다. 그런데 필자처럼 둔한 사람은 잘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다.  분명히 어떤 부분은 다른 요소의 패러디나 재도색처럼 보였다.  

오늘 네이버에는 이 영화를 설명하는 글이 올라왔다. 2편을 먼저 본 셈인데 1편도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평론가의 글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무서움이 떠 올랐다.  이렇게 많은 상징과 문화의 편린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이것은 모자이크의 타일과 같다.   아마도 호기심에 , 영향을 준 원래것들을 다 보고 싶어질 터인데 시간이 없다. 이것을 다 보면 시간이 없다.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난중일기와 일본측의 기록을 대조해보는 성격을 갖는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영화다. 그래서 이 글은 정말 재미있게 읽되 영화와 관련된 영화들은 다시 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올려놓고 몇번을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집의 마루에는 아직보지 않은 많은 DVD들이 있고 , 듣지도 못한 cd들은 셀수도 없다.   시간은 무섭게 흘러간다. 아직도 보고 싶은 책의 목록은 너무나 길다. 이들은 모두 시간을 요구한다. 이럴때는 팔자가

타란티노같이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보다는 워쇼스키 형제와 비슷한 사람으로 만들기 보다는 끊임없이 조잘 거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적어 놓지 않을 수는 없다. 블로그는 웹의 로그 (Web Log)이기 때문이다.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681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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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가 개봉됐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 팽팽한 긴장감, 느닷없는 유혈 낭자극 그리고 지극히 '쿨'한 캐릭터들. '거장급 악동 감독' 타란티노의 솜씨는 여전히 '즐길' 만하다. 그의 신작을 맞이하며, 15년 전으로 돌아가 <펄프 픽션>(1994)을 다시 본다. 혁신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 장르에 대한 독특한 접근과 수많은 인용, 인상적인 캐릭터들로 가득 찬 이 영화는 그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주었다. 꽤 긴 세월이 지났지만, 다시 본 <펄프 픽션>에선 아직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글엔 다수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글 l 김형석(영화 칼럼리스트)       구성 |  네이버영화

할리우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
암스테르담에서 할리우드까지

쿠엔틴 타란티노가 등장하는 <펄프 픽션>의 프로모션 컷 이미지(맨 왼쪽 사진)와 포스터 이미지들(나머지 사진).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1990년대의 가장 중요한 영화"라고 말한 <펄프 픽션>은, 타란티노의 표현에 의하면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세 개의 이야기"다. 할리우드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뒤흔든 이 영화는, 세 개의 커다란 이야기를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진행시키며, 그 사이에 버팀목처럼 신을 배치하고 인물과 사건을 교차시킨다. 장르 영화의 진부한 공식 속에서도 하찮은 요소들만 모아 만든 것 같은 <펄프 픽션>은, 가장 관습적인 것을 통해 가장 신선한 것을 만들어내는 '재주꾼 타란티노'의 솜씨가 가장 빛났던 작품이다.

<펄프 픽션>의 핵심을 이루는 세 개의 이야기는 한꺼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사실 타란티노는 비디오 대여점 점원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로저 에버리와 세 편의 단편을 엮은 옴니버스 장편을 기획했다. 이것은 이탈리아 호러 거장인 마리오 바바의 <블랙 사바스 I tre volti della paura>(1963)를 참조한 것이었다. 영화 오프닝과 엔딩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유명한 '호러 레전드' 보리스 카를로프가 등장해 영화를 열고 닫는 <블랙 사바스>는, 세 개의 단편으로 엮인 옴니버스 영화. 1990년에 먼저 에버리가 <대혼란의 지배 Pandemonium Reigned>라는 이야기를 완성했는데, 이것은 이후 <펄프 픽션>에서 부치(브루스 윌리스)의 에피소드인 '금시계'의 토대가 된다. 이후 타란티노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블랙 마스크 Black Mask>라는 가제를 붙였다. <블랙 사바스>에 대한 패러디인 <블랙 마스크>라는 제목은, 1921년에 창간되어 30년 동안 수많은 작가들을 세상에 내놓은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 잡지의 이름이기도 했다. 세 편의 에피소드를 모두 범죄 영화로 채우는 것이 그의 초기 계획이었다.

마리오 바바의 <블랙 사바스>에 등장하는 보리스 카를로프의 모습(맨 왼쪽 사진). 1921~1951년 동안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의 산실이었던 잡지 <블랙 마스크>(나머지 사진).
당시 타란티노의 파트너는 배우이자 제작자인 대니 드 비토였다. 그가 공동 대표로 있는 '저지 필름'(Jersey Films)에선, 타란티노가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1992)를 내놓기 전부터 차기작은 무조건 자신들과 해야 한다며 여기저기 공언을 하고 다녔다. 드 비토는 메이저 스튜디오인 콜럼비아와 계약이 되어 있었고, 1992년에 타란티노는 콜럼비아로부터 시나리오 개발비 100만 달러를 받아 암스테르담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그곳에서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외국 생활. "내가 쓰는 모든 것은 극도로 사적인 것이며, 모든 것은 글을 쓰는 당시의 상황과 결부되어 있다"고 말하는 타란티노는, <펄프 픽션>에서 빈센트(존 트래볼타)가 암스테르담에서 돌아왔다고 설정함으로써 당시의 경험을 반영했다.

옴니버스로 만들려는 계획은, 세 개의 스토리가 교묘히 뒤섞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구조로 대폭 수정되었다. 사실 이러한 구조는 <저수지의 개들>을 편집하면서 어느 정도는 컨셉트를 잡은 것이었고,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J.D 샐린저의 소설도 영감을 주었다. 글래스 패밀리의 구성원들이 마치 부유하듯 등장하는 샐린저의 소설들. <펄프 픽션>의 인물들도 그렇게 이야기 속에 들고난다. 에버리의 원안으로 '금시계' 에피소드를 완성한 타란티노는 빈센트와 미아(우마 서먼)의 이야기와, 빈센트와 줄스(새뮤얼 L. 잭슨)의 이야기를 차례로 만들었다.

하지만 콜럼비아는 투자를 망설였다. 마약과 폭력에 대한 부분이 문제였고, 스튜디오 간부들은 이 시나리오가 지나친 광기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했다. 타란티노는 "그들은 내 시나리오를 두려워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데, 좌절에 빠진 그에게 접근한 사람은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이었다. 인디펜덴트 영화사였던 미라맥스는 당시 디즈니의 자회사였지만, 운영에 있어서는 독립권을 지닌 상태였다. 와인스타인은 <펄프 픽션>의 800만 달러를 전액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1993년 9월20일에 촬영을 시작한 영화는 약 1년 후인 1994년 10월14일에 개봉되었다. 이 시기는 오스카를 노리는 영화들이 플랫폼(platform) 방식, 즉 소수의 극장에서 개봉해 분위기를 끌어올린 후 오스카 전후로 개봉관을 늘리는 방식으로 개봉하는 시즌이었다. 하지만 마케팅의 귀재 하비 와인스타인은 1,100개의 극장에서 와이드 릴리징 방식으로 개봉했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였고, 예술영화 관객과 상업영화 관객을 한꺼번에 사로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의 계산은 적중했고, <펄프 픽션>은 북미 지역에서 1억79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 2억1290만 달러의 돈을 벌었다. 제작비 800만 달러에 마케팅 비용으로 1,000만 달러를 쓴 영화가 이룬 기적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 할리우드까지
주요 배역과 타란티노 감독의 모습을 담은 프로모션 컷(왼쪽 사진). 싸구려 소설(펄프 픽션) 분위기를 낸 우마 서먼의 프로모션 컷(오른쪽 사진). 우마 서먼은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대사 있는 배역'을 맡은 여배우다. 그들의 파트너십은 한때 스캔들로 번지기도 했으며, <킬 빌> 시리즈에서 절정에 달한다.
약간의 난항은 있었지만 캐스팅은 의외로 수월했다. 먼저 '빈센트 베가'라는 캐릭터는 <저수지의 개들>에서 마이클 매드슨이 맡았던 빅 베가(미스터 블론드)의 동생으로 설정되었다. 타란티노는 맨 처음 매드슨에게 제안했지만, 매드슨은 서부극 <와이어트 업>(1994)을 선택했다(매드슨은 그 선택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당시 한참 떠오르던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빈센트 역을 강력하게 원했지만, 타란티노는 존 트래볼타에게 꽂혔고, 제작자 와인스타인에게 "트래볼타를 캐스팅하지 못하면 연출을 포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처음에 트래볼타는 머뭇거렸다. 1970년대 최고의 청춘 스타였지만 그는 1980년대에 극심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타란티노는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트래볼타에게 "왜 더 나은 영화를 선택하지 않느냐"며 아픈 곳을 건드렸고, 트래볼타는 상처받았지만 타란티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감동했다. 그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한때 타란티노는 프리퀄 형식으로, 매드슨과 트래볼타가 형제로 등장하는 <베가 브라더스>라는 영화를 기획하기도 했지만 현실화되진 못했다).

줄스 윈필드 역은 처음부터 새뮤얼 L. 잭슨을 염두에 뒀고 오디션까지 했지만, 폴 칼데론이라는 배우를 만난 후 타란티노의 마음은 흔들렸다. 그 사실을 안 잭슨은 줄스 역을 지키기 위해 LA로 날아와 다시 오디션을 보았고 줄스 역을 가져갔다(한편 타란티노는 트래볼타와 잭슨의 화학작용이 예상 외로 커서 잠시 <펄프 픽션 2>를 기획했지만 곧 접었다고 한다).

부치 쿨리지 역의 브루스 윌리스는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았다. 다리는 <저수지의 개들>의 래리(미스터 화이트)에 이어 <펄프 픽션>에선 해결사 윈스턴 울프 역을 맡은 하비 케이틀이 놓았다. 케이틀의 딸과 브루스 윌리스의 딸은 절친 관계. 어느 날 딸을 데리러 윌리스의 집에 간 케이틀은 "타란티노가 새 영화를 준비하는데 좋은 역들이 많다"고 말해 주었다. 윌리스는 시나리오를 구해 보았고, 즉시 타란티노에게 전화를 걸러 무슨 역을 맡겨도 하겠다고 했다(하지만 내심 빈센트 역을 탐내고 있었다는 후문). 미키 루크, 실베스터 스탤론, 맷 딜런 같은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타란티노는, 당시 약간 하향세를 겪고 있던 윌리스를 잡았다.

줄스 역을 놓고 새뮤얼 L. 잭슨과 경합을 벌였던 폴 칼데론은 마셀러스의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로 등장한다(왼쪽 사진). 일정상 지미 역을 맡지 못한 스티브 부세미는 카메오로 출연한다. 그는 웨이터로 등장하는데, <저수지의 개들>에서 웨이트리스에게 절대로 팁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던 것과 묘한 대칭을 이룬다.
미아 월레스 역엔 홀리 헌터, 멕 라이언, 이사벨라 롯셀리니, 대릴 한나, 조앤 쿠잭, 미셸 파이퍼 등 수많은 여배우들이 거론되었지만 타란티노는 우마 서먼을 선택했다(사실 서먼의 에이전트는 강도 중 한 명인 허니 버니 역을 서먼에게 추천했다).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펌프킨과 허니 버니 커플의 캐스팅은 팀 로스에 의해 주도되었다. 조니 뎁이나 크리스천 슬레이터도 거론되었지만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에서 프레디(미스터 오렌지) 역을 맡았던 팀 로스를 다시 기용했고, 팀 로스는 대학 시절 함께 영화를 찍었던 어맨더 플러머를 추천했다. '마약쟁이' 랜스와 '피어싱 마니아' 조디 커플은, 원래는 커트 코베인과 코트니 러브 커플이 하기로 했던 배역. 하지만 에릭 스톨츠와 패트리샤 아퀘트가 차지했다.

보스인 마셀러스 월레스 역은 먼저 시드 헤이그에게 제안이 갔으나, <저수지의 개들> 오디션에 참가한 바 있는(하지만 캐스팅되진 못했던) 빙 레임즈가 차지했다. 부치의 '프랑스 애인' 파비엔느 역은, 타란티노가 유럽영화제 때 만났던 포르투갈 배우 마리아 드 메데이로스가 캐스팅되었다. 그리고 지미 역은 원래는 스티브 부세미가 맡기로 했지만 일정상 불가능해 타란티노가 직접 맡았다.

배우들은 모두 똑같이 14,000달러의 주급을 받았다. 그들의 지명도를 따져 보면 형편없는 돈이었지만, 대신 순수익이 발생했을 때 인센티브를 지불하기로 했다.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두었고, 배우들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돈을 가져갔다.



정확한 대칭의 내러티브
펄프에 대한 두 가지 정의. 1. 부드럽고 축축하며 형체 없는 물질의 덩어리. 2. 거친 재질의 종이에 인쇄된 것이 특징인, 소름 끼치고 선정적인 테마를 담은 책이나 잡지(왼쪽 사진). 펌프킨과 허니 버니의 프롤로그가 끝나면 딕 데일의 기타 연주가 '끝내주는' 음악 'Misirlou'와 함께 제목이 뜬다(오른쪽 사진).
<펄프 픽션>의 내러티브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공간과 시간을 중심으로, 영화에서 제시되는 순서대로 그 흐름을 정리해보았다(자막 부분은 검정색이다). 잘 살펴보면, 펌프킨과 허니 버니가 강도 행각을 벌이는 '호손 그릴'(Hawthorne Grill)의 사건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이루고, 프롤로그의 뒤와 에필로그의 앞에 빈센트와 줄스의 사건이 배치된다. 한가운데는 1972년에 어린 부치가 겪었던 일이 있으며, 그 앞 뒤로 '빈센트 베가와 마셀러스의 부인' '금시계' 챕터가 있다. 정확한 대칭구도다.

(자막. 'pulp'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1. 프롤로그 - '호손 그릴'에서 펌프킨과 허니 버니가 강도를 계획한다.
(타이틀 자막. "Pulp Fiction")
#2. 자동차 - 빈센트와 줄스가 수다를 떨며 어디론가 간다.
#3. 브렛의 아파트 - 빈센트와 줄스가 브렛(프랭크 웨일리) 일당에게서 보스 마셀러스의 가방을 다시 빼앗고 총을 난사한다.

(챕터 자막. "빈센트 베가와 마셀러스의 부인")
#4. 바 - 마셀러스가 복서인 부치에게 돈을 주며 경기에서 일부러 지라고 말한다. 빈센트와 줄스가 가방을 가지고 들어온다.
#5. 랜스의 집 - 빈센트가 랜스에게서 헤로인을 구입한다.
#6. 마셀러스의 집 - 빈센트가 마셀러스의 아내 미아를 픽업한다.
#7. 잭 래빗 슬림 - 빈센트와 미아가 트위스트 경연대회에 참여한다.
#8. 마셀러스의 집 - 미아가 빈센트의 헤로인을 흡입한 후 혼수 상태에 빠진다.
#9. 랜스의 집 - 빈센트의 아드레날린 주사로 미아가 깨어난다.
#10. 마셀러스의 집 - 빈센트와 미아는 이 모든 사건을 마셀러스에게 비밀로 하기로 약속한다.


어린 시절의 부치(왼쪽 사진)와 어른이 된 부치(오른쪽 사진). 이 교차점은 <펄프 픽션> 내러티브 전개에서 대칭의 중간 지점이 된다. 이후 스토리는 이전까지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관계와 운명을 정리하며 전진한다,
#11. 1972년, 어린 부치의 집 - 베트남 전쟁에서 사망한 부치의 아버지. 전우인 쿤스(크리스토퍼 워큰)이 부치에게 가보인 금시계를 전해준다.
#12. 라커룸 - 부치가 어린 시절의 꿈에서 깬다.
(챕터 자막. "금시계")
#13. 택시 - 부치는 마셀러스의 명령을 어기고 경기에서 이긴다. 상대 선수는 죽었다. 부치는 에스메랄다(안젤라 존스)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도망친다.
#14. 모텔 - 부치는 연인 파비엔느와 만난다. 다음날, 부치는 파비엔느가 짐을 쌀 때 금시계를 빠트린 걸 알게 된다.
#15. 부치의 아파트 - 금시계를 가지러 간 부치는, 잠복중이던 빈센트를 우발적으로 죽인다.
#16. 거리 - 빈센트를 죽이고 모텔로 돌아오던 부치는 우연히 마셀러스와 맞닥트린다. 총격전이 벌어진다.
#17. 전당포 - 부치와 마셀러스는 메이너드(듀안 휘태커)에게 잡히고, 마셀러스는 지하실에서 험한 꼴을 당한다. 이때 부치가 마셀러스를 구출하고, 마셀러스는 부치의 배신을 용서하는 대신 LA를 떠나라고 한다.
#18. 모텔 - 부치와 파비엔느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챕터 자막. "보니의 입장")
#19. 브렛의 아파트 - 빈센트와 줄스는 화장실에 숨어 있던 마빈(필 라마)의 총격 속에서 살아남는다. 그들은 마빈을 차에 태우고 보스에게 가다가, 자동차에서 우발적인 발사로 마빈을 죽인다.
#20. 지미의 집 -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줄스의 친구인 지미의 집에 온다. 지미는 아내 보니(바네시아 발렌티노)가 오기 전에 해결하라고 난리다. 줄스는 보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해결사인 울프가 등장해 모든 상황을 해결한다.
#21. 폐차장 - 빈센트와 줄스는 울프와 헤어진다.

#22. 에필로그 - '호손 그릴'에 온 빈센트와 줄스. 이때 펌프킨과 허니 버니가 강도를 저지르지만 줄스에게 제압당한다. 줄스는 그들을 살려주고 빈센트와 함께 커피숍을 떠난다.
(엔딩 크레디트)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세 개의 이야기
프롤로그(왼쪽 사진)와 에필로그(오른쪽 사진). 펌프킨과 허니 버니의 관점에서 보면 범죄 중에 겪은 황당한 일이며, 빈센트와 줄스의 입장에선 인생의 갈림길과도 같은 지점이다. 줄스는 식당 문을 나서며 범죄의 세계를 떠나고, 빈센트는 곧 죽게 된다.
<펄프 픽션>의 뒤섞인 시간은 다섯 개의 시간대로 나눌 수 있다. 어린 시절 부치(챈들러 린다우어)의 이야기가 제일 앞이다. 브렛의 아파트와 지미의 집에서 빈센트와 줄스가 겪는 일은 둘로 쪼개져 있다. 그 다음엔 '호손 그릴'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빈센트가 미아와 잭 래빗 슬림에 가고, 부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Part 1. #11 "1972년의 일"
: 어린 부치가 가문의 상징인 금시계를 받게 된다.
Part 2. #2~#3. #19~#21 "보니의 입장" 챕터
: 보스의 가방을 찾으러 브렛의 아파트에 간 빈센트와 줄스. 사고로 마빈을 죽이고 지미의 집에서 울프의 도움으로 일을 해결한다.
Part 3. #1. #22 "프롤로그" "에필로그"
: '호손 그릴'의 사건.
Part 4. #4~#10 "빈센트 베가와 마셀러스의 부인" 챕터
: 바에서 보스 마셀러스에게 가방을 건네주는 빈센트와 줄스. 빈센트는 보스의 아내 미아와 함께 트위스트를 추고, 미아는 마약 과용으로 혼수 상태에 빠지며, 빈센트가 그녀를 살려낸다.
Part 5. #12~#18 "금시계"
: 마셀러스를 배반하고 경기에서 이긴 부치는 우발적으로 빈센트를 죽이지만, 마셀러스를 구출한 대가로 연인 파비엔느와 함께 무사히 LA를 빠져나간다.

회상 신을 제외하면, 36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펄프 픽션>의 스토리 구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시간 순서에 따른 기승전결 구조가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엔 정확한 기승전결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토머스 포프는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에서 타란티노가 "시간의 순서를 포기하고 캐릭터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기승전결을 만든다"고 말한다. 만약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었다면 주인공인 빈센트와 줄스는 영화 중간에 사라진다. 여기서 타란티노는 시간을 뒤섞음으로써 긴장감을 유지하며, 이런 방식은 관객에게 묘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 우린 영화 중간에 빈센트가 죽는 것을 이미 보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빈센트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 채 '호손 그릴'의 문을 나선다. 그는 가방을 보스에게 전해주고 미아와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부치의 아파트에서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타란티노의 뒤틀린 시간이 주는 페이소스이자 아이러니다.

택시의 배경은 1940년대 할리우드 흑백영화에서 사용된 매트(matte) 촬영 기법 효과를 사용한다(왼쪽 사진). 마셀러스의 집엔 오픈릴 방식의 레코더와 첨단 테크놀로지가 공존한다(오른쪽 사진).
이런 방식에 대해 몇몇 평론가들은 '시대 정신'이라는 표현을 쓴다. 현대의 관객들은 동시에 다양한 시간대의 이야기를, 마치 TV의 채널을 돌리며 시청하듯 한꺼번에 받아들이며 조각난 이야기들을 이어서 하나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타란티노는 불가능한 시간대를 뒤섞고 시대의 아이콘을 휘저으면서 더욱 미스터리에 빠진다. 마약상 랜스가 먹는 시리얼은 1983년에 이미 단종된 것이다. 첨단의 감시 장치가 있는 미아의 집엔 CD 플레이어 대신 LP 플레이어와 오픈릴 식의 레코더가 있다. 부치가 택시에 탄 장면에서 그 배경은, 전형적인 1940년대 흑백 영화를 연상시킨다. 미아와 빈센트는 1950년대 풍의 로큰롤 댄스홀 '잭 래빗 슬림'에서 1960년대의 춤인 트위스트를 춘다. 게다가 존 트래볼타는 1970년대 디스코의 아이콘이었다.

TV는 다른 방식으로도 <펄프 픽션>에 영향을 주었다. 팻 도웰이라는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펄프 픽션>의 구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TV 시청자라면 이 영화의 구조에 매우 익숙할 것이다. 진행되다가 잠깐 멈춰서 여러 갈래로 쪼개지고 그 갈래들이 서로 영향을 주는 방식의 스토리를, 미국인들은 매일 TV에서 본다. 시트콤이나 드라마에서 중간에 광고가 삽입된 후,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 제목에 들어간 '펄프'(pulp)라는 표현은 너무나 적절해 보인다. 이 영화의 시간은, 마치 형체 없이 흐물거리는 물질처럼 유연하고 무질서하다.

'펄프'에 대한 두 번째 사전적 정의, 즉 "펄프 재질의 책이나 잡지"도 <펄프 픽션>의 이야기 구조와 관련 있다. 1930~40년대의 펄프 잡지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예 표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했고, 뒷 표지엔 '다음 호에 계속'이라고 써 있었다. 이것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사용한 <펄프 픽션>의 구조에 영향을 주었다.

시간의 직선적 구조 파괴는 1960년대 유럽 모더니즘 감독들이 시도했다. 알렝 레네 감독의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1961. 왼쪽 사진). 한편 집단 캐릭터가 등장하는 로버트 앨트먼의 <숏 컷>(1993. 오른쪽 사진)은 종종 <펄프 픽션>과 비교되었다. 타란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숏 컷>에서 '스토리'는 부차적인 것이고, <펄프 픽션>에서 '스토리'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두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효과는 같다."
<펄프 픽션>의 이야기는 현실이나, 현실에 기반을 둔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과거에 존재했던 영화, 펄프 소설, TV에서 왔다. 타란티노는 그것들을 재료로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나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다. 나는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종류의 영화를 실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타란티노는, 세르지오 레오네가 웨스턴을 재창조해 스파게티 웨스턴을 만든 것처럼, 기존의 장르들을 가져와 재구성했다. 그리고 여기에 특유의 '입담'과 '수다'를 섞는다.

<펄프 픽션>엔 유난히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 많다. 영화에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일반적으로는 편집을 통해 그 과정을 축약한다. 하지만 <펄프 픽션>은 그 과정을 모두 꼼꼼히 보여주며, 사람들은 차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빈센트와 줄스가 보스의 가방을 찾기 위해 브렛의 아파트로 갈 때, 타란티노는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에 2분을, 차에서 내려서 아파트로 들어가기까지 또 5분을 할애한다. 다른 영화의 킬러들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시간에 그들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다른 범죄 영화들에선 폭력 장면이 끝난 후 재빨리 장면이 바뀌지만 <펄프 픽션>의 범죄자들은 뒷처리를 하느라 바쁘다.

타란티노는 정작 권투 경기 장면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부치가 에스메랄다의 택시를 타고 모텔로 가는 데는 7분을 할애한다. 그 시간 동안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잡담만 오간다.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느냐고? 그런데 <펄프 픽션>에선 그 잡담이 바로 사건이다. 타란티노 영화의 중심은 '캐릭터'이며 '배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타란티노 식 이야기'이며, 수많은 잡담들이 모여 영화를 더욱 개성 있고 단단하게 만든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이 개봉됐다.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 팽팽한 긴장감, 느닷없는 유혈 낭자극 그리고 지극히 '쿨'한 캐릭터들. '거장급 악동 감독' 타란티노의 솜씨는 여전히 '즐길' 만하다. 그의 신작을 맞이하며, 15년 전으로 돌아가 <펄프 픽션>(1994)을 다시 본다. 혁신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 장르에 대한 독특한 접근과 수많은 인용, 인상적인 캐릭터들로 가득 찬 이 영화는 그에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주었다. 꽤 긴 세월이 지났지만, 다시 본 <펄프 픽션>에선 아직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글은 10월 31일자 <할리우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 (1)> 제하의 기사에 이어지는 후반부입니다.>


이 글엔 다수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글 l 김형석(영화 칼럼리스트)       구성 |  네이버영화

할리우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
현기증 나는 인용의 향연

고다르의 <이방인들 Bande a part>의 뮤지컬 신(왼쪽 사진). 카페에 들어 간 세 주인공은 갑자기 동작을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의 제목에서 자신의 영화사 이름을 'A Band Apart'를 따왔다(오른쪽 사진).
영화광들에게 타란티노의 영화는 축복 그 자체이다. 수많은 인용과 오마주로 이루어진 그의 영화는, 수십 편의 영화를 참조하고 반영하고 모방한 후 자기 방식으로 변형해 녹여낸다. <펄프 픽션>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용은 '잭 래빗 슬림'에서 빈센트(존 트래볼타)와 미아(우마 서먼)가 참여하는 댄스 콘테스트. 이 장면은 장 뤽 고다르의 <이방인들 Bande a part>(1964. 국내 DVD 출시명은 <국외자들>)에 대한 오마주다.

"나는 항상 영화 속의 뮤지컬 신들을 좋아했다. 특히 '뮤지컬 장르가 아닌 영화' 속의 뮤지컬 신을 더욱 좋아했으며, 고다르 영화 속의 뮤지컬 신을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에선 갑자기 뮤지컬 장면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 신은 매우 매혹적이다. 그리고 뮤지컬 장르에 속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뮤지컬 신을 삽입하려면 영화의 흐름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 점이 영화를 더욱 달콤하게 만든다." 사실 <이방인들>의 카페 댄스 신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죽음의 리오 Rio das Mortes>(1971, TV)나 할 하틀리의 <심플맨>(1992)에서도 인용되었던 명장면. 여기서 타란티노는 한 술 더 떠 여주인공 안나 카리나를 우마 서먼에 겹쳐 놓는데, 서먼의 헤어스타일은 <이방인들>의 여주인공이었던 안나 카리나가 <비브르 사 비>(1962)에서 보여준 것이다.

<펄프 픽션>의 우마 서먼(왼쪽 사진)과 <비브르 사 비>의 안나 카리나(오른쪽 사진). 헤어스타일이 매우 흡사하며, 둘 다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있다.
댄스 콘테스트 장면엔 <이방인들> 외에도 여러 참조가 있었는데, 타란티노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1963)에 등장하는 댄스 콘테스트에 대한 오마주라고도 말한다. 그리고 배우들도 자발적으로 연구했다. 손가락으로 V를 만드는 동작은 1960년대 TV 시리즈 <배트맨>에 등장하는 고고 댄스 바투시(Batusi)를 트래볼타가 참조한 것이며, 우마 서먼은 애니메이션 <아리스토캣>(1970)에서 고양이 더치스가 보여주었던 댄스를 보고 구체적인 동작을 만들었다.

<펄프 픽션>(왼쪽 사진)과 <8 1/2>(오른쪽 사진)의 댄스 콘테스트 장면.
존 트래볼타의 춤(상단 왼쪽 사진)과 배트맨의 바투시 댄스에 등장하는 동작(상단 오른쪽 사진). 우마 서먼의 춤(하단 왼쪽 사진)과 <아리스토캣>에 등장하는 고양이 더치스의 동작(하단 오른쪽 사진).
<펄프 픽션>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인용은 마셀러스(빙 레임스)의 가방이다. 전형적인 히치콕의 맥거핀인 이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것을 접한 사람들은 놀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고, 펌프킨(팀 로스)는 그것을 보고 "아름답군"이라며 외마디 탄성을 내뱉는다. 음모이론에 능통한 네티즌들은 마셀러스의 목 뒤에 반창고가 붙어 있는 것과 가방을 여는 번호가 '666'인 것에 착안하여, 악마가 마셀러스의 영혼을 끄집어내 가방 안에 넣었다는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타란티노는 "그것은 관객이 원하는 그 무엇도 될 수 있다"며 말을 아낀다. 이 장면에서 타란티노가 '비주얼'을 인용한 영화는 로버트 앨드리치 감독의 걸작 느와르 <키스 미 데들리 Kiss Me Deadly>(1955). 이 영화에선 가방을 열었을 때 핵 연쇄 반응이 일어나며 폭발이 일어난다.

<펄프 픽션>엔 마셀러스와 관련된 인용이 많은데, 차 안의 부치(브루스 윌리스)가 길을 건너던 마셀러스와 조우하는 장면은, 히치콕의 <싸이코>(1960)에서 돈을 훔쳐 달아나던 메리언(자넷 리)이 사장과 만나는 장면에서 가져왔다. 마셀러스가 메이너드(듀안 휘태커)와 제드(피터 그린)에게 치욕을 당하는 설정은 존 부어맨의 <서버이벌 게임 Deliverance>(1972)에서 가져왔다. 이 영화에서 그것은 도덕적 딜레마로서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는데, <펄프 픽션>에선 한 남자가 엮는 이상한 하루의 끔찍한 일 정도로 그 무게는 덜해진다.

<펄프 픽션>(왼쪽 사진)과 <키스 미 데들리>(오른쪽 사진)에서 가방을 내려보는 인물들. 가방 안에선 빛이 나온다.
<펄프 픽션>(왼쪽 사진)과 <싸이코>(오른쪽 사진). 보스를 속인 자들이 우연히 보스와 만나게 된다는 설정이 같다. 하지만 <싸이코>의 보스는 그냥 지나가고, <펄프 픽션>에선 거리의 총격전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펄프 픽션>엔 수많은 인용이 넘쳐난다. 빈센트가 미아의 가슴에 아드레날린 주사 바늘을 꽂는 장면은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에 등장하는 '심장에 말뚝 박기'에서 온 것이며, 어린 부치를 찾아온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 쿤스 대위 역에 크리스토퍼 워큰을 섭외한 건, 그가 출연했던 <디어 헌터>(1978)를 연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부치가 전당포에서 적들을 해치울 무기를 고르는 장면은 인용의 극치다. 처음엔 망치를 들었던 그는 야구 배트를 집었다가 전기톱으로 바꾼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일본도를 고른다. 타란티노는 이 장면에서 <워킹 톨 Walking Tall>(1973, 야구 배트)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1974, 전기톱) <야쿠자>(1975, 일본도) 등을 인용했다고 한다.

<펄프 픽션>이 보여주는 인용은 영화를 넘어서 TV 쇼, 만화, 펄프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잡식 취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측면. 타란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대중문화가 세상에서 저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의 정체성을 형성한 미국의 매력 중 하나이며, 엄연히 미국의 일부다. 그것은 '정크푸드 컬처'이다."



펄프 방식의 구원, 폭력 그리고 유머

빈센트와 줄스는 같은 일을 경험한다. 하지만 줄스만이 그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줄스는 구원 받고 빈센트는 죽는다.
놀라운 건 이 악취미적 영화에 구원의 테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반복되는 모티프는 '구원의 메시지'이며, 범죄자와 살인을 다루는 이 영화가 윤리적 측면에서 거론되는 건 그런 이유다. 줄스(새뮤얼 L. 잭슨)는 펌프킨과 허니 버니(어맨더 플러머)를 살려준다. 빈센트는 아드레날린 주사로 미아를 구한다. 부치는 마셀러스를 위기에서 구한다. 울프(하비 케이텔)는 빈센트와 줄스를 위기에서 구한다. 반면 인과응보도 있다. 차 안에서 실수로 마빈(필 라마)를 죽인 빈센트는 결국 자신의 총에 의해 부치의 손에 죽게 된다.

구원과 관련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총을 쏘기 전에 줄스가 전달하는 메시지다. 구약성서의 에스겔서 25장 17절이라며 줄스가 웅변하듯 던지는 심판의 말은 이렇다. "의로운 사람의 길은 이기적인 자의 불공정한 행동과 악한 자의 포악함에 의해 사방이 에워싸인다. 자비와 선의의 이름으로 어두운 골짜기를 돌아다니며 약한 자들을 돌보는 자에게 축복 있으니, 그는 형제들의 진정한 보호자이며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는 자라. 이에 내가 나의 형제를 해치고 죽이려는 자들을 깊은 복수심과 불타는 분노로 벌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복수를 내릴 때에야, 너는 내가 하나님인 줄 알리라."

사실 줄스의 메시지는 뒤의 두 문장만 에스겔서 25장 17절일 뿐,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이다. 시편의 구절들에서 짜깁기한 내용도 있으며, 타란티노의 우상 중 한 명인 소니 치바가 TV 시리즈 <그림자 군단 Shadow Warriors>(1980)에서 했던 대사도 있다(소니 치바는 적을 처치하기 전에 정의와 그들의 악행에 대해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곤 했다). 그리고 여기엔 196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이며 1966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던 <모더스티 블레이즈 Modesty Blaise>의 대사들도 들어 있다.

비디오 대여점 점원 시절, 타란티노와 친구들은 소니 치바의 <그림자 군단>을 보는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타란티노는 <킬 빌 1>(2003. 왼쪽 사진)에 하토리 한조(<그림자 군단>의 캐릭터 이름과 같다) 역으로 그를 캐스팅한다. <펄프 픽션>에서 빈센트가 보는 만화가 바로 <모더스티 블레이즈>다(오른쪽 사진). 팜므 파탈 스타일의 '여자 제임스 본드' 캐릭터였던 모더스티 블레이즈는 타란티노의 유년기 우상 중 한 명이었다.
줄스는 이 구절을 영화 속에서 세 번 말하는데, 마지막에 펌프킨과 허니 버니를 살려줄 땐 분노가 아닌 자비의 의미로 변한다. 이것은 그 전에 그가 겪었던 일 때문이다. 보스의 가방을 찾으러 가서 브렛(프랭크 웨일리) 일당을 처리할 때, 갑자기 화장실에서 숨어 있던 한 녀석이 튀어나와 총을 쏜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총알은 모두 빗나가고 줄스는 목숨을 건진다. 이때 그는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과거를 청산한 후 범죄 조직을 나가기로 결심한다(그래서 이후 부치의 아파트엔 빈센트만 잠복하게 된다). 하지만 같은 일을 겪었음에도 빈센트는 기적을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고, 결국은 비참하게 죽는다. 줄스만이 구원을 받은 것이다.

사실 빈센트에게 '죽음'의 이미지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반복적으로 암시되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세 번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나올 때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다. 보스의 집에서 화장실 문을 나섰을 때 미아는 쓰러져 있었고, '호손 그릴'의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총을 든 대치 상황이었으며, 결국은 부치의 아파트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죽게 된다.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나왔을 때 그를 맞이하는 죽음.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확정적이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갑작스레 재앙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타란티노 식 운명론이기도 하다.



정교하게 차려진 음식의 의미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의 첫 공간을 레스토랑으로 정한 타란티노는(왼쪽 사진), 두 번째 영화를 레스토랑에서 시작해 레스토랑으로 끝낸다(오른쪽 사진). 두 영화에서 그곳은 범죄가 잉태되는 곳이다.
레베카 L. 엡스타인이라는 영화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총 93신으로 이루어진 <펄프 픽션>의 83신에는 음식이 등장하거나 음식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한다. 이 놀라운 사실은, 타란티노의 트레이드마크인 '수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식당은 대화 장면을 찍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라고 말하는 타란티노는 영화 속에 유독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곳'을 많이 등장시킨다. 타란티노는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는데, 생각해보면 펌프킨과 허니 버니는 함께 아침을 먹은 후 정서적 유대감이 상승되어 함께 범죄까지 저지르고, 빈센트와 미아는 '잭 래빗 슬림'에서 음식을 나눈 후에 함께 춤을 춘다.

한편 <펄프 픽션>에서 음식은 한 인간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이 영화에서 줄스의 변화는, 그의 아침 식사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영화 초반부에 그는 빈센트와 빅 맥과 와퍼에 대해 이야기하고, 브렛의 아파트에서 빅 카후나 햄버거를 먹고 스프라이트를 마신다. 하지만 기적을 경험하고 갱스터 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한 후엔 '호손 그릴'에서 아침 식사로 브랜 버핀을 시킨다(그러면서 돼지고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말한다). 햄버거의 육식성에서 머핀의 초식성으로 변한 것이다. 이것은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변한 것이기도 한데, 영화엔 줄스의 여자친구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이 언급되며, 줄스는 햄버거를 버리고 머핀을 선택함으로써 그녀를 따르게 된 셈이다. 그런데 갱스터 무비의 관습에 의하면, 파트너를 이룬 두 남자 중 한 명이 여성(연인, 어머니)의 품으로 가면 나머지 한 명은 죽게 된다. <펄프 픽션>에서 줄스의 변화 이후 빈센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건, '장르의 법칙'에서 보면 예견된 것이다.

같은 날 아침, 검은 수트를 입고 한입 가득 햄버거를 먹는 줄스(왼쪽 사진)와 티셔츠를 입고 작게 떼어낸 머핀을 먹는 줄스(오른쪽 사진). 줄스의 변화는 '음식'에서 가장 먼저 감지된다.
꼼꼼히 살펴보면 <펄프 픽션>엔 음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점을 상당 부분 발견할 수 있는데, 음식에 대한 여성 캐릭터의 태도는 '욕망'과 관련된다. 부치의 연인인 파비엔느(마리아 드 메데이로스)가 말하는 '잘 차려진 아침 식사' 메뉴는 다음과 같다(그녀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식사를 원하는 사람이다). 메이플 시럽이 얹어진 블루베리 팬케이크, 노른자를 조금만 익힌 달걀 프라이, 소시지 대여섯 개, 톨 사이즈의 쥬스 그리고 블랙 커피. 디저트로는 살짝 녹은 얇은 치즈를 얹은 블루베리 파이 한 조각. 이때 부치가 "아침으로 파이를?"이라고 묻자 파비엔느는 "파이는 하루 중 언제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한다. 'pie'라는 단어가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속어라는 걸 감안하면, 파비엔느의 대답은 섹슈얼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반면에 남자들은 부적절한 음식을 먹는다. 브렛은 아침 7시 30분에 치즈 버거를 먹는다(그걸 또 줄스가 빼앗아 먹는다). 마약상 랜스(에릭 스톨츠)는 하루 종일 파자마를 입은 채 저녁에도 시리얼을 먹는다. 울프(하비 케이틀)이 마셀러스의 전화를 받는 시점은 분명 아침인데, 그는 정장을 하고 어느 칵테일 파티 장소에 있다. 그들의 막 되먹은 유아기적 식 습관은, <펄프 픽션>의 뒤엉킨 시간대와 관련 있다. 그런 면에서 '커피'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제때 먹는' 음식이며 타란티노는 그 시간대를 교묘하게 배치한다. 펌프킨과 허니 버니는 함께 커피를 마시고 범죄에 뛰어들고, 마셀러스는 미아의 부탁으로 커피와 도넛을 사러 가며, 지미(쿠엔틴 타란티노)는 빈센트와 줄스와 울프에게 커피를 따라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같은 날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며, '커피 마시기'라는 행위는 이 영화의 조각 난 시간대를 하나로 모아준다

저녁에 파자마를 입고 우유와 시리얼을 먹는 랜스(왼쪽 사진). 한 손에 담배를 들고 밀크 쉐이크를 마시는 미아(오른쪽 사진).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에서 유제품이 내면적 취약성과 자제심 부족을 상징한다는 점이다(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빈센트는 미아가 시킨 5달러짜리 쉐이크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더니 맛을 본 후에 그녀의 포로가 된다. 한편 미아는 쉐이크를 먹은 후 마약 과용으로 죽기 직전까지 간다. 허니 버니는 커피에 크림을 왕창 넣어 마신 후 흥분하고 총을 빼 들며 범죄에 돌입한다.

반면 <펄프 픽션>엔 음식이 아님에도 음식처럼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술, 담배, 카페인, 코카인, 헤로인 등이 음식의 등가물로 취급되는데(담배 이름조차 'Red Apple'이다), 마약을 만드는 장면은 마치 요리하는 과정처럼 그려지며, 빈센트는 마약 주사를 맞을 때 허기를 채우는 듯한 포만감을 드러낸다. 빈센트와 미아는 모두 음식점에 가기 전에 '애피타이저'처럼 마약을 하며, 마약 과용은 마치 과식처럼 묘된다. 헤로인을 코로 흡입한 후 정신을 잃은 미아의 증상은 '구토'이며 입가엔 방금 먹은 쉐이크가 흘러나와 있다.

<펄프 픽션>에서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를 넘어서 의미를 확장한다. 그것은 '이름' 혹은 '상징'으로 사용되는데, 부치와 파비엔느는 서로를 부를 때 '슈거 팝'(Sugar Pop) '레몬 파이'(Lemon Pie) '젤리 빈'(Jelly Bean) 같은 음식명을 사용한다. 마셀러스는 부치에게 "복서는 와인처럼 숙성되는 것이 아니라 식초처럼 변질된다"는 비유를 든다. 줄스가 자신의 변화를 표현하는 방식은 더욱 흥미롭다. 그는 신이 자신을 코크(Coke)에서 펩시(Pepsi)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콜라 브랜드를 통해 한 인간의 정체성이 바뀌었음을 드러내는, 타란티노만이 쓸 수 있는 방식이다.

토스터기에서 페스트리가 튀어오르자(왼쪽 사진), 부치의 총구가 불을 뿜는다(오른쪽 사진).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음식은 폭력적 상황의 예비 동작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빅 카후나 버거는 총격전으로, 밀크 쉐이크는 혼수 상태로, '호손 그릴'의 아침 식탁은 무장 강도로, 토스터기에 들어간 페스트리는 부치가 빈센트에게 총을 쏘는 계기로 이어진다. 마셀러스는 커피와 도넛을 사 오다가 부치와 맞닥트리고, 그 결과 이상한 녀석들에게 고초를 겪는다. '음식'이라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일상적 소재를 통해 이토록 절묘한 구성을 해내는 타란티노의 솜씨에 새삼 놀라는 대목이다.



논쟁 속의 '타란티노 효과'
마릴린 먼로와 흡사한 여자가 <7년 만의 외출>(1955)의 명장면을 그대로 재현한다(왼쪽 사진). 이외에도 제임스 딘, 제리 루이스, 딘 마틴 등의 '짝퉁'이 등장한다. 빈센트가 '잭 래빗 슬림'에 들어가려 하지 않자 미아는 "Don't be a…"라는 말에 이어 허공에 네모(square)를 그린다(오른쪽 사진). 'square'는 속어로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뜻. 즉 "고지식하게 굴지 마"라는 뜻이다. 여기서 타란티노는 화면에 점선을 그리는데, 이러한 '프레임 속의 프레임'은 관객들에게 "당신은 지금 영화라는 판타지를 보고 있다"고 환기시킨다.
<펄프 픽션>이 등장하자 수많은 평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로 이 영화를 설명했다. '직선적 시간 진행'이라는 절대적 진리는 사라지고, 수많은 인용을 통해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자기반영성을 보여주며, 하나의 공간에 다양한 시간대가 공존하는 키치적 영화. 킬러이자 구원자이고 동시에 영웅인 줄스는, 이 영화가 하나의 도덕률에 얽매인 시대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타란티노는 '쿨'했고 심각함을 경계했다. 그는 감상주의로 인해 자신의 영화가 무뎌져 관객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그러기에 풍자하고 빈정댄다. 그는 전통적인 선악 개념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비정한 세계를 만들었고, 그 어떤 것에도 지나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마초적 신화를 조롱함으로써 그 정체를 폭로하고, 할리우드적 폭력으로 만들어진 영웅주의를 박살냈다. 타란티노의 영화 미학에서 '폭력'은 본질적이지만, 그는 그 폭력을 보고 관객이 '웃기를' 바란다.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이렇게 말했다. "<펄프 픽션>은 얄팍하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신선하다. 이처럼 재미에 충실한 영화는 많지 않다."

하지만 보수적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사악한 유머가 사춘기적 악취미라고 비판했다. 여성에 대한 관음적 시선이나 물리적 폭력이 없고, 줄스-빈센트의 파트너십이나 미아-마셀러스 부부를 통해 인종간의 평등한 관계와 문화적 다양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로 평가하는 평자들도 있었지만, 백인 감독의 영화에 수시로 등장하는 'nigger'(깜둥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입장도 있었다(여기에 타란티노는 "그 어떤 단어도 권력을 지니진 못한다"고 반박했다).

무감각하고 갑작스러운 줄스의 살인(왼쪽 사진). 빈센트가 아드레날린 주사를 미아의 심장 부분에 꽂아 그녀를 살리는 장면은, 보수 평단에 의해 '사춘기적 악취미'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펄프 픽션>에 대한 비판의 쟁점은 '냉소주의'와 '무도덕성'이었다. 그의 냉소주의는 절대 지루하지 않은, 잔인한 아이러니의 유희다. 스펙터클과 액션이 뒤엉키는 가운데 속사포 같은 '말빨'이 수반되고, 그의 과장된 스타일은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현실의 개입을 일찌감치 차단해버렸다. 타란티노는 마약, 살인, 타락, 섹스처럼 현실적으로 매우 첨예한 요소를 다루지만, 그것들이 지닌 윤리적 의미를 거세시키고 자신만의 영화 미학으로 재조합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도덕적이지도, 부도덕적이지도 않다. 그는 무도덕적이다. 그는 도덕과 관련 없는 세계를 만들며,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희생자들은 동정과 공감의 대상이 아니다.

'타란티노 비판자'들은 <펄프 픽션>이 궁극적으로는 1990년대 미국 사회의 신보수주의를 강화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백인 캐릭터가 '깜둥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는 영화는, 인종주의자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하는 '위험한' 영화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비판들에 타란티노는 "내가 자라면서 익혔던 삶의 태도는, 내가 듣는 모든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는 말로 대응했다.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점철된 1960~70년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그가 자연스레 체득한 냉소주의와 무도덕성은, 어쩌면 그 세대 감독들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도덕과 정의감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영화. 타란티노는 그러한 공백 상태를 폭력 미학과 쇼크와 유머와 아이러니로 채웠다. 심사숙고하는 태도나 성찰의 모습은 지난 세대의 '올드'한 모습이었다. 타란티노에게 중요한 건 '즉각적인' 그 무엇이었다.

로저 에버리의 <킬링 조>엔 <펄프 픽션>에서 마약상 랜스로 나왔던 에릭 스톨츠가 출연한다(왼쪽 사진). <유주얼 서스펙트>는 '타란티노 공식' 안에 있는 영화로 분석되기도 한다.
다양한 논쟁이 있었지만, 확실한 사실은 <펄프 픽션> 이후 '타란티노 효과'가 4~5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암살자(hit man)와 사기꾼(con man)이 되었고, '타란티노적인'(Tarantinoesque)이라는 형용사가 영화 저널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가 급격히 쏟아졌다. 절친인 로저 에버리는 <킬링 조>(1994)로 데뷔했고, 타란티노가 주연을 맡은 <데스티니>(1995)를 비롯해, <냉혈한 Coldblooded>(1995) <벼랑 끝에 걸린 사나이>(1995) <덴버>(1995) <필링 미네소타>(1996) <밸리에서의 2일>(1996) <키즈 투 툴사 Keys to Tulsa>(1997) 등의 '타란티노적인' 영화들이 등장했다. <유주얼 서스펙트>가 나왔을 때 의 평론가 마놀라 다지스는 당시 유행하던 타란티노의 공식에 이렇게 말했다. "일군의 남성 캐릭터들이 있으며, 그들은 '쿨'하면서 절망적이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뒤엉킨 플롯, 거친 대사들, 우연적인 사디즘적 요소, 대중문화에 대한 언급 등이 첨가된다." 그리고 장 피에르 멜빌, 오우삼, 기타노 다케시 등이 미국에서 덩달아 재발견되었다.

<펄프픽션>은 산업적으로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제작비 800만 달러의 이 영화는, 할리우드 역사상 인디펜던트 영화로는 최초로 북미 지역에서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이 기적을 목격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펄프 픽션>을 "인디펜던트의 <스타워즈>"라고 평했다. 디즈니가 1993년에 자회사로 만든 미라맥스에서 제작한 <펄프 픽션>이 큰 성공을 거두자, 20세기폭스는 '폭스 서치라이트'를, 파라마운트는 '파라마운트 클래식'을, 소니는 '소니 클래식'을 설립했고 유니버셜은 '폴리그램'을 인수했다. 시나리오 작가들에겐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곧장 할리우드에 진출해, 잘하면 타란티노처럼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거머쥘 수도 있다는 신화가 탄생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계기로 <펄프 픽션>을 되돌아본 시간은, 15년 전 타란티노의 놀라운 솜씨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솜씨가 '여전함'을 넘어서 아직도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 그처럼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감독은, 진정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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